문장웹진(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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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경성탐정록 (제1회: 운수 나쁜 날)
UI 디자이너인 동생 한상진과 함께 [경성탐정록]을 공동 창작, 하우미스테리 동호회 (http://www.howmystery.com)에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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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자피로와 친구들
대신 저는 방금 전 에른스트 국장의 목소리가 에른스트 국장의 것이 아니라 제롬 경의 것이라는 걸 알아챘습니다. 새장 안에는 제롬 경 대신 눈, 코, 입 없이 시체빛 살가죽으로 얼굴이 뒤덮인 아기가 갇혀 있었으니까요, 에른스트 혹은 제롬 경은 새장을 열어 아기를 난간 위에 올려 두고선, 두 손아귀로 아기의 얼굴을 붙잡아 두 엄지손가락을 쑤셔 넣어 샘물처럼 피가 터져오르는 두 눈알의 자리를 만들어냈습니다. 다음엔 코, 입, 귀의 구멍을. 온통 피와 고름으로 뒤범벅되어 서서히 눈알을 굴리고 코를 벌름거리며 입벌려 무언가 말하려는 아기의 새빨간 얼굴을 저는 난간 밖으로 밀어버렸는데 잠에서 깨어났을 때, 창밖을 지나가는 층적운이 마치 꿈으로부터, 아기가 머리통부터 떨어져 터져버린 거리로부터 반사되듯 붉게 물들고 있었고 새장 안에는 아무도 없었지요. 나이젤과 자피로가 나란히 앉은 플라스틱 테이블 위로 얼음이 녹은 유리잔의 그림자가 투명하게 번져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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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객잔
용이가 만화경을 들여다보며 대답했다. 만화경의 둥그런 입구가 달을 향했다. 나는 상태에 대해 생각했다. 달이라도 보며 자위하고 싶은 중의 외로움. 종이 다르지만 누구라도 유혹하고 싶은 달의 욕정. 용이가 고개를 저었다. ─ 중이 병 속에 기른 건, 달이 아니에요. 용이가 말을 이었다. ─ 물이 자신을 비추면 중마저도 달을 보지는 않죠. 용이는 창가에서 물러났다. 만화경을 남겨두고선. 범어가 멈추고 승려와 창기가 골목에 누워 뒹굴었다. 개나리 꽃잎들이 뒤집혀지며 침묵 사이로 불쑥불쑥 말도 불경도 아닌 소리가 튀어나왔다. ─ 떠나는 거겠지. 용이가 계단을 내려왔다. 몸이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 왜 다들 내려가는 건지 모르겠어. 나는 문 앞을 가로막고 서서 빗장을 잡았다. ─ 과아가 밑에서 기다릴 테니까요. ─ 그 녀석은 겁쟁이야. ─ 나와 어울리죠. 용이가 나에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