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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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7월, 넝쿨장미, 사랑
7월, 넝쿨장미, 사랑 김경미 녹색 나뭇잎들마다에 마악 투우 끝낸 붉은 소들 여기저기 주저앉아 있다. 햇빛은 어제보다 각진 은박지들 박아내고 검은 숨 기차처럼 자꾸 쏟아지니 나팔꽃만한 소읍에 가서 어깨보다 낮은 담벽을 볼 것이다 서해 저녁하늘에 젖은 이마 영영 맡겨버릴 것이다 그런데 불났다 너무 뜨거워서 저도 제 마음 가까이 못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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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꽃은 누가 생각해 주나
꽃은 누가 생각해 주나 김경미 꽃은 누가 제일 많이 생각해 주나 벌이 생각해 주나 흙이 생각해 주나 혹은 변덕스런 햇빛과 물이 제일 많이 생각해 주나 여린 귓밥 파 주듯이 내민 작은 무릎 깔개 딱딱한 굳은살의 신발 댓돌 늦은꽃받침 제때꽃받침 이름은 많아도 제일 많이 꽃 생각해 주었건만 서러운 꽃받침 하인의 오후다 바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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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밤하늘의 알약
밤하늘의 알약 김경미 종일 머릿속 나무들이 벌목꾼에 쫓긴다 나뭇잎, 꽃잎들 으깨져 벌목꾼의 흉기 끝을 적시고 적시다 잘못 찢겨진 살갗 바깥으로 흐르는 피를 붉게 상기되어 끝없이 들이받는 멧돼지 떼에 밟혀지고 꺾여지는 나뭇가지의 비명 소리들 견딜 수가 없는 두통이다 약사는 알약 하나에 5백 원짜리 동전 하나를 가져갔다 물을 두 컵쯤 마시고 밀림 정글을 나섰는데 순식간에 초원 위 저녁별이 또렷하다 사슴도 보인다 고통이 항상 값진 것만은 아니라고 너무 캄캄하지 말라고 밤하늘에다 나도 오백 원짜리 황금색 동전 하나 붙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