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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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놀러 와, 잎이 지는 날
놀러 와, 잎이 지는 날 김남극 놀러 와 꽃잎 지는 날 슬쩍 손금 내밀고 여린 선들이 만들어낸 물결 같은 당신의 그 복잡한 시절들을 내 손금에 연결해 그리고는 지워 저 적멸보궁 쯤 가서 버리든가 상왕봉 지나 북대 절 뒷마당에 쏟아버려 그리고 다시 손 내밀어 잡아줄게 손금 없는 손으로 산 아래까지 몸을 굴려 둥굴어질 때까지 작아질 때까지 놀러 와 잎이 지는 날 문득 잎이 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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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연민
연민 김남극 한 번쯤은 별똥별이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냇가에서 그 별똥별을 모두 담아 그대에게 보내고 싶다는 그 별빛이 사그라드는 아주 잠시 동안만이라도 당신의 마음 가까이 가고 싶다는 근사하고도 유치한 시를 쓰고 싶었다 내가 떠난 뒤에도 별똥별은 가끔 소낙비처럼 앞개울에 쏟아졌을 것이다 내가 떠난 뒤 그 별똥별 묶음을 받을 사랑도 어디론가 사라졌을 것이다 무엇이라도 남은 것이 있지 않을까 사람이 다 떠난 마을에 가보았다 노을이 장엄하게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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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헌 책이 있는 새 방
헌 책이 있는 새 방 김남극 최신형 화재경보기가 자꾸 울린다 불장난 하는 꿈을 포기한 지 오랜데 묵은 책을 치우니 경보가 멎었다 오래된 것은 위험하다고 오래된 책을 읽으면 오래된 거역과 전복의 꿈 때문에 장기가 상할 수도 있다고 단명할 수도 있다고 경보가 울리다 그치고 또 울리는 새 집 헌 책 가득한 방에서 오래된 새 방에서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30여 년간 강독하는 레닌이 당 건설을 위해 30여 년간 분투하고 있는 오래된 새 방에서 보낸 며칠 경보기 건전지를 빼두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