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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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모든 것이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해
모든 것이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해 김도 가령 쓸모가 있다고 생각되어, 이유도 없이 집이 없어지는 퇴근길 버스 차창에 기대어 그래. 텐트를 사자. 그래서 여기저기서 펴자. 초콜렛 냄새가 나는 흙과 잔디 위의 여름에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는 겨울밤 도로에서 너는 생각했다. 원터치 텐트. 그동안 뭐가 뭐지? 왜 다 저기 모여 있는 거지? 알 수 없게 온갖 간판과 사람 들이 많이도 지나갔다. 어디든 내가 있을 자리에 펴서 그 자리를 지킬 수 있게 원터치 텐트. 라는 것을 약간 빛 묻은 강처럼 반짝이는 하얀 폴리에스터 원을 바닥에 던지며 너는 씩 웃는다. 텐트의 형태로 펴지는 빛 속으로 네가 먼저 들어간다. 나는 엉금엉금 기어서 들어가며 흰 지붕과 벽. 자전거 살과 새가 움직이는 소리. 너의 곁에 앉으면서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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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침묵의 주문서
침묵의 주문서 김도 지금 침묵이 온다. 달이 지나면 없을 팝업 스토어 세 개의 음악이 섞이는 골목길을 밀려가고 밀려오는 각양각색 인간의 파도를 따라 걷듯이 구르는 자동차의 활짝 열린 창문. 지글지글 끓는 베이스. 뿜어져 나오는 다소 동물적인 욕망으로 헐떡대는 노랫말만 골라서 외고 외치는 힙합 아티스트가 밥을 다 먹고 입을 헹군 물도 삼키고 다시 이빨에 끼우는 이빨 모양 금붙이의 반짝반짝. 있을까요? 물어본다. 그럼 끄덕인다. 무조건 다행이에요. 침묵은 흐뭇하다. 또 올게요. 다음에 다시 침묵은 온다. 예식장의 벨루체 홀과 르네상스 홀의 하객이 식사하는 뷔페 스테이크 철판 담당 직원을 마주하고 선 채로 굳어 버린 두툼한 사내 때문인지 유독 느긋하게 익는 여러 소의 살점들은 많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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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셰퍼드
김도 개들과 조금 떨어진 무덤 옆에 주저앉아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정말이지 숨이 꼴까닥 넘어가기 직전까지 갔다가 돌아온 느낌이었다. 한 마리도 아닌, 두 마리의 성견 셰퍼드가 발산하는 힘을 혼자서 감당하기엔 힘에 부쳤다. 서둘러 담배 한 대를 피운 김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손에 쥐기에 적당한 싸리나무 가지를 꺾어 회초리를 만들었다. 회초리 없이 덩치가 크고 사나운 셰퍼드 두 마리를 끌고 산을 넘어 집으로 가기엔 역부족이란 걸 비로소 알아차린 거였다. 말을 듣지 않으면 매로 다스려야만 했다. 일단 개들의 기를 꺾어 놓아야만 했다. 김은 손으로 무릎을 짚고 힘겹게 일어나 개들에게로 다가갔다. 근데…… 정말 사람을 물지 않을까. 명색이 군견이나 경찰견으로 쓰이는 셰퍼드인데…… 김이 가까이 다가가자 두 마리 셰퍼드는 엉덩이를 들고 일어났다. 침을 줄줄 흘리며 김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