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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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청사로 들어간 사람
청사로 들어간 사람 김동균 청사는 처음이에요 청사에는 겨울 해변이 액자로 걸려 있네요 많은 풍경이 복도에 늘어서 있네요 처음 방문하세요? 안내하는 사람 있었어요 그것들은 모두 액자에 걸려 있어요 청사 안에는 나무가 없대요 액자에는 비록 많은 것들이 있지만 복도 끝에 청사의 사계절이 설치되고 창밖으론 엠뷸런스가 지나가는 게 보이네요 방문객들이 계속 들어오네요 긴 복도를 지나면 저무네요 공무를 마친 사람들이 계단을 내려갔어요 붉은빛으로 울연하네요 그리고 청사는 오늘 공개하자는 결정을 내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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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외출
외출 김동균 양우산을 쓴 사람. 얼굴이 보이진 않지만 얼굴이 있을 거야. 양우산을 접어도 있을 거야. 초콜릿도 먹고 초콜릿을 너무 많이 먹으면 입꼬리에도 묻을 거야. 가방에서 티슈를 찾을 땐 한쪽 어깨를 올리고 목과 어깨 사이에 우산대를 끼우고 있을 거야. 티슈가 없다면 창피한 모습을 가리는 데도 양우산이 쓰일 거야. 아무튼 있을 거야. 없다면 찾을 때까지 양우산을 쓰고 얼굴을 붙인 다음 양우산을 접을 거야. 결국에는 집에 들어갈 거야. 방에서는 드러날 거야. 양우산을 쓴 사람. 한밤에 불을 끄고 잠에 드는 사람. 잠들기 전에 얼굴을 떠올려 볼 거야. 전원이 꺼진 모니터에 검은 얼굴이 비칠 거야. 거울 앞에선 적나라하게, 냉장고 문을 닫을 때마다 얼핏얼핏. 그러나 모르는 사람의 이마와 눈과 귀를 어디서부터 조립하고 어떻게 떠올려야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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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전부 수용할 수 있는 날
전부 수용할 수 있는 날 김동균 채점하고 있어. 누가 동그라미를 치고 있어. 초록을 칠하면 청귤이 되고 노랑을 칠하면 우산이 되는 여름 안에서, 점수를 매기고 있어. 청귤도 맞고 우산도 다 맞는 거라면서 연거푸 치고 있어. 동그라미를 보여 주면서 칭찬을 주고받았어. 받은 위로는 돌려주었어. 이번에는 검은 색깔을 써볼래. 섬유 타래로 엮은 트램펄린을 끌고 와볼게. 힘껏 뛰어오르면 용수철에서 까마귀 우는 소리가 나는, 외국의 낯선 동전들이 주머니에서 쏟아지는, 그것도 틀린 게 아니라고 그래서 덧칠을 조금 더 해봤어. 자신감을 가지고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 볼게. 이마에서 솟아난 땀이 턱 밑까지 내려가고 쓰고 있던 모자가 굴러 떨어지고 아직 한 번도 안 쓴 물감들 전부 구멍 안으로 쏟아져서 이제 정말 아무것도 안 보이는 와중에, 재빨리 구멍 안으로 들어가 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