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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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백년의 책
ⓒGabriel Wu 작가소개 / 김인숙 2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신방과를 졸업했다. 1983년 《조선일보》로 등단했으며, 소설집 『함께 걷는 길』, 『칼날과 사랑』, 『유리 구두』, 『브라스밴드를 기다리며』, 『그 여자의 자서전』, 『안녕, 엘레나』, 『단 하루의 영원한 밤』 등, 장편소설 『핏줄』, 『불꽃』, 『79-80 겨울에서 봄 사이』, 『긴 밤, 짧게 다가온 아침』, 『그래서 너를 안는다』, 『시드니 그 푸른 바다에 서다』, 『먼 길』, 『그늘, 깊은 곳』, 『꽃의 기억』, 『우연』, 『봉지』, 『소현』, 『미칠 수 있겠니』, 『모든 빛깔들의 밤』, 『벚꽃의 우주』 등이 있다. 한국일보문학상·현대문학상·이상문학상·이수문학상·대산문학상·동인문학상·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문장웹진 201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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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산 너머 남촌에는
산 너머 남촌에는 김인숙 참 이상도 하지. 그 기억이 왜 그렇게나 떠오르는지 모를 일이다. 서방이 죽었을 때의 기억은 물론이거니와 생때같은 자식을 잃었을 때의 그 생생하던 고통도 다 잊었는데, 잊었다기보다는 더 이상은 가뭇가뭇 잘 떠오르지도 않는데, 그놈의 바람, 귀밑을 스치는 바람이 불어오기만 하면 꼭 그 때가 생각나는 것이다. 좀 높은 곳의 창을 발돋움해 열다가도 문득, 베란다에 서서 아들이 퇴근할 때가 되었는가, 손주들이 귀가할 때가 되었는가를 흔들흔들 서서 내다보다가도 문득, 귀밑 흰머리 몇 올이 흔들리는가 싶기만 하면 난데없이 그때가 떠올랐다. 참 이상도 하지. 그것은 특별한 기억도 아니거니와, 그런 일이야 그이 인생에서는 넘치고 처지는 정도의 것이니, 각별히 기억에 담고 말고도 할 게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그놈의 바람…… 그 살랑거리는 바람이 귀밑을 간질이기만 하면, 어쩌자고 그 눅눅한 기억 중에서도 유독 그놈의 바람만이 떠오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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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스페이스 섹스올로지
스페이스 섹스올로지 김인숙 그즈음 유자는 자주 암벽 공원을 찾았다. 동네에 그런 곳이 있었다. 넓은 공원 한 곳에 높은 암벽을 세우고, 예쁜 색깔의 조약돌 같은 돌들을 색색이 박아 놓았다. 사람들이 그 돌을 손으로 잡고 발로 짚으며 올라가는 것을 보지는 못했다. 몇 달 가까이 그 동네에 살고 있었고, 그즈음에는 거의 매일 공원을 산책했음에도 암벽은 늘 아무 방해 없이, 아무 매달리는 것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그곳에 멈춰 서서 고개를 쳐들어 꼭대기를 바라보는 사람도 대체로는 그녀뿐이었다. 경고판이 붙어 있었다. 안전 요원 없이 등반을 금지한다는. 아마도 특정한 날에만 운영을 하는 시설인 것 같았다. 그녀가 그곳을 산책하는 시간은 그 특정한 때의 밖이거나. 아니면 그녀의 시간이 특정했을지도. 그녀는 ‘특정’이라는 말을 생각했다. 그즈음에는 말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