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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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숨결
숨결 김정남 1 붓을 잡은 손이 자꾸 곱아든다. 장갑을 끼면 터치감이 좋지 않아서 맨손으로 할 수밖에 없다. 차가운 대기 속으로 희부연 빛살들이 시름시름 쏟아진다. 하루 중에 제일 싫은 시간이다. 생기를 잃고 시들어 가는 빛이 좋을 리 없다. 서쪽 담장에서 알록달록한 꽃밭을 그리던 주(周) 씨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사실 이 일도 그의 주선으로 이루어진 일이다. ‘판타지 월드’라는 놀이 공원에 채색 작업을 시작한 것은 연초부터다. 이월 중순까지 모든 작업을 마무리하고 일시불로 돈을 받기로 했다. “거의 다 그렸네요? 카우보이들이 뛰쳐나오겠어요.” 그가 특유의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회전목마 기구에 카우보이 그림을 그리는 것이 나는 애초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요즘 어린아이들이 카우보이를 알 턱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요정들이 나오는 환상적인 동화 속 풍경이 더 나을 것 같다고 놀이 공원 사장에게 말했지만, 그는 카우보이를 고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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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하오의 웅덩이
하오의 웅덩이 김정남 1 방문이 벌컥 열리는 서슬에 놀라 눈을 뜬다. 선잠이 들었기에 그 거친 손길까지도 오롯이 전해진다. 창문이 푸르게 변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잠에 들었기에 눈은 모래알이 들어간 것처럼 뻑뻑하고 쓰리다. “아이랑 밥 좀 먹어 줘!” 바짝 독이 오른 아내의 말투가 뾰족하게 신경을 건드리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오른팔을 뻗어 머리맡을 더듬는다.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뒤미처 깨닫는다. 장애를 수시로 무시하는 오래된 습관이 밉다. 무려 5개월이나 지났는데도 말이다. 검지, 중지, 약지, 소지, 이 네 손가락은 그저 매달려 있을 뿐 움직일 수 없고, 주먹을 쥐었다 펴는 간단한 동작을 해보려고 해도, 그런 나를 조소하듯, 엄지손가락만 간신히 까딱거린다. 이제 손을 쓸 수 없단 말이다. 이렇게 단단히 머릿속에 각인시켜도 생각보다 손이 먼저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