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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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호랑이는 사랑을 남겼네
김현은 숲에서 나와 외쳤다. “내가 호랑이를 쉽게 잡았다!” 김현이란 놈은 결국 나빴다. 스스로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죽도록 만들었다. 제 손에 코 안 묻히고 코를 푼 것이다. 왜 ‘쉽게’ 잡았다고 했을까? 김현은 호랑이를 잡은 일이 없다. 호랑이 스스로 죽었다. 그런데도 쉽게 잡았다니? 이 모두가 김현의 계략이었던 말인가? 호랑이가 스스로 죽도로 유도한 것이. 그러니 저토록 당당하게 외칠 수 있었겠지. 김현이 처녀를 사랑하기나 했었던 것일까. 김현은 호랑이가 시킨 대로 사람들의 상처를 치료했더니 다 나았다. 김현은 절을 짓고 호원사(虎願寺)라 하였다. 항상 호랑이를 위해 불경을 읽었고 호랑이의 저승생활이 편안하기를 빌었다. 김현은 죽을 때 지나간 일의 기이함에 깊이 감동하여 이것을 붓으로 적어 전하였으므로 세상이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것은 김현이 실제로 겪은 이야기가 아니라, 김현이 지어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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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리뷰] 월간 〈읽는 극장〉 1회 - ‘나는, 작가입니다’
.-14) 김현, 『낮의 해변에서 혼자』, 현대문학, 2021 김비, 「내 글의 목숨」, 《자음과 모음》, 2020 여름 김비, 『제주 사는 우리 엄마 복희씨』, 김영사, 2020` 김현, 『호시절』, 창비, 2020 ▶ 3월 〈읽는 극장〉에서 낭독된 문학 작품 문의 :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theater@arko.or.kr / 02)3668-0020 《문장웹진 2021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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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심리학 실험실
졸음이 밀려오던 오후 수업시간에 어떤 학생이 김현숙 선생님에게 부탁했어요. 얼마 전에 광주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얘기해 달라고요. 동네 오빠가 거기에서 재수 학원에 다녔는데 그 일로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광주에서 오셨으니 진실이 무엇인지를 알 것 아니냐며. 김현숙 선생님은 망설이다 입을 열었습니다. 저희는 잔뜩 기대하며 들었습니다. 특유의 표준어 투로 십 분 정도 나지막하게 얘기하고는 영어 수업으로 돌아갔어요.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어서 우리는 투덜댔어요. 그날 저녁에 저는 광주항쟁에 대해 아버지에게 물었지요. 더 자세히 알고 싶었거든요. “누가 항쟁이라고 하더냐?” 아버지는 주변을 둘러보며 조그맣게 말했습니다. “학교 선생님이요.” “학교 선생 누구?” “김현숙 선생님이라고 영어 가르치는…….” 아버지의 표정을 보는 순간 저는 움츠러들었어요. “항쟁이라고 하면 안 되는데. 광주사태라고 해야 하는데.” 아버지가 혼잣말을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