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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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이웃의 이 옷
이웃의 이 옷 김현서 헌 옷 수거함에 라벨 태그를 떼지 않은 오리털 패딩이 버려져 있다 버리는 건 버려진다는 건 우리가 늘 해 오던 일 서로가 서로를 꾹꾹 누르며 깃털에 묻은 햇살을 짜내는 일 인연이 닿기도 전에 인연이 다한 것처럼 이미 버려질 것을 직감한 이웃의 이 옷 꽉꽉 꽥꽥 울어도 보고 꽉꽉 꽥꽥 웃어도 보고 수거해 가지 않은 저녁은 폐허처럼 저물어 간다 추위를 뒤집어쓴 채 우린 어디로 수거될지 간절했던 시간은 다시 정신이 들고 이 옷의 이웃 잡풀들은 일찍 늙어 버리고 밀매된 결말은 번번이 엇나가고 속 시끄러운 수거함에 밤이 되면 중고매장으로 나가는 한 생이 버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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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무선주전자
무선주전자 김현서 어제는 꺾어진 붓꽃이었어 뿌리를 따라 긴 타원형 이파리가 마주나 있는 연못가 이른 아침이 물 위로 떨어지면 수심에 빠져들지 않도록 손끝을 파르르 떨면서 바람이 불었지 동심원처럼 둥글게 둥글게 뜨거워졌다가 이내 식어버릴 태양 얇은 비닐 같은 가면을 걷어내면서 모호한 인사를 건네던 끓는 물속의 자줏빛 혀 아물지 않는 통증을 우려 가까스로 채워 놓은 허공 같은 꽃잎 꽃대마다 진딧물처럼 맺힌 수액을 받아먹으며 꽃망울은 수포처럼 부풀어 오르고 갑자기 끼어 들어온 등나무의 기억에 머릿속이 하얘진 붓꽃 한 송이 한낮이 잠시 방을 채운 사이 얼마나 많은 꽃잎이 차올랐는지 자꾸만 조여 오는 심장을 움켜쥐고 붓꽃 한 송이 잎맥에 기록된 어지러운 시간을 가슴 뻐근한 흑자색 웃음을 차분히 따라내지만 평온해진 수면 아래에는 여전히 흔들리던 유리 붓꽃 한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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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빗소리
빗소리 김현서 지붕에서 후드득 빗소리가 새어 들어온다 통증처럼 온몸으로 퍼진다 소리는 침묵을 잃고 집은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열다섯 평 계약서에 적혀 있지 않는 이 빗소리 셋돈 내는 날이면 바람을 동반한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밤새 빗물은 빗소리를 내뱉고 집은 빗소리를 받아 삼킨다 저도 나도 살아 본 적 없는 생을 힘껏 퍼붓고 나면 집은 구석부터 괴사되어 간다 너무 아프지 않게 살아가야지 작디작은 이곳, 어디부터 절단해야 할까 제 몸에 맞지 않는 집에 몸을 끼워 넣는 이 빗소리 두 개 세 개 네 개의 머리로 버티던 춥고 배고픈 소리 방음이 잘되도록 방수가 잘되도록 천막을 치고 빗물에 젖지 않으려는 이불을 만지작거린다 또 한 계절을 무사히 건너기 위해 빗물은 얼마나 더 퍼부을까 빗소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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