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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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커버스토리 10월호 김혜순 시인과 지하철 4호선
자주 흥얼거리셨던 노래 마디가 “며칠 후 며칠 후 요단 강 건너가 만나리”였는데, 아마도 ‘천국은 해보다 밝다’는 원곡의 의미보다 강을 건너야 만나진다는, 우리의 기원에 자리 잡은, 이쪽에서 저쪽4)으로의 이주를 그토록 바라셨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1) 김혜순, 『우리들의 陰畵』, 문학과지성사, 1990. 2) 김혜순, 「별을 굽다」, 『당신의 첫』, 문학과지성사, 2008. 3) 김혜순, 「0」, 『한 잔의 붉은 거울』, 문학과지성사, 2004. 4) 김혜순 시인의 시론에서 바리공주 신화는 가장 중요한 모티브라 할 수 있는데, 시인은 최근의 시론집에서 ‘바리공주 자신의 역할을 이쪽이 아닌 저쪽과의 경계의 자리에 설정’한다는 본문 문장에 “이쪽저쪽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은 공간을 이승과 저승, 현실과 환상처럼 물리적으로 나눌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현존하는 것을 일차적인 것으로 간주해, 다른 쪽을 결여로 간주하기 않기 위해서다”라는 주석을 붙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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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시적 여유의 회복을 위해
서정시가 시인의 내면을 드러내는 언어라면, 김혜순과 이기성 사이에는 넘지 못할 어떤 선이 있다. 그것은 외적 대상에 대한 묘사의 태도에서 나타나는데, 김혜순이 안타깝게 대상을 품에 안는다면 이기성은 냉정하게 그것을 관찰한다. 여기에 물론 좋고 나쁨이 있을 수는 없다. 이것은 대상과의 거리를 표시할 뿐이다. 그래서 김혜순이 대상과의 일체감을 표현함으로써 여성성 자체의 힘과 아픔을 노래한다면, 이기성은 결코 일체화될 수 없을 듯한 대상을 통해서 세계의 슬픔을 노래한다. 세계에 대한 이 차이 나는 대응의 표현에 있어서 김혜순이 ‘꼼지락거리고, 물고, 만지고, 입술을 대고’ 등의 용언을 사용한다면, 이기성은 ‘두리번거리고, 안간힘을 쓰고, 찌그러지고, 끈적한’ 등의 용언을 사용한다. 김혜순이 재생의 국면에 주목한다면, 이기성은 불모의 순간에 집중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그러므로 여성의 언어라는 말로 포괄될 수 없는 굴곡을 갖는 언어들이다. 이것은 차라리 여성의 언어를 넘는 언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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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文學, 수렁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
그것을 읽은 선생이 나의 은사인 김혜순 시인에게 셋이 점심 한번 먹자고 연락을 한 것이다. 김혜순 선생과 나는 사당역에서 만났다. 그때도 나는 약간 늦었는데, 선생은 그 어느 때보다 초조한 모습이었다. 택시를 탈까 지하철을 탈까, 일초도 안 망설이고 선생은 ‘안전한 지하철’을 타자고 하였다. 홍대입구역에서 내려 선생과 나는 문학과지성사가 있는 ‘무원빌딩’까지, 뛰었다. 학교를 다닌 2년 간 그 누구보다 자주 만난 김혜순 선생이 뛰는 것도 처음 봤고 아예 뛰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처럼 평소엔 달팽이처럼 걷는 내가 어딜 막 뛰어 가는 것도 거의 처음인 것 같았다. 가까스로 우리는 약속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그래도 오래 김병익 선생을 알고 지낸 김혜순 선생이 보기에 그건 이미 꽤 늦은 거나 다름없었다. 점심으로 일인분씩 따로 나오는 샤브샤브를 먹으며 김병익 선생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나는 엉뚱한 생각에 빠져 있는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