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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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수필 하늘타리 꽃
하늘타리 꽃 유점남 꽃의 고향은 아무래도 하늘인가 보다. 하루하루 하늘을 향해 다가간다. 땅에서 나서 기어이 하늘로 간다. 교회 앞을 지날 때였다. 언뜻 누군가의 기척에 돌아보니 화살나무 울타리 사이로 하얀 꽃 한 송이가 말간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가까이 보니 곱슬머리 앳된 얼굴의 작은 꽃 ‘하늘타리’였다. ‘아! 너였구나.’ 뜻밖의 장소에서 어릴 적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여름이면 나무나 담장을 타고 오르던 무성한 잎과 흰 꽃들, 자랄 때 무심히 보았던 그 꽃을 자세히 보기는 처음이었다. 낮에 잠깐 눈 맞춤했지만 순박한 모습과 향내가 잠자리에 들어도 아른거렸다. 밤새 장대비가 내렸다. 이른 아침부터 꽃의 안부가 궁금했다. 비가 그친 틈을 타 서둘러 집을 나섰다. 막 꽃 앞에 다가서는 찰나, 소리 없이 떨어져 버리는 꽃송이. ‘내가 오기를 기다렸을까!’ 누군가의 마지막을 지켜본 것처럼 가슴이 먹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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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수필 나눔의 꽃
나눔의 꽃 이주현 말날로 잡았다. 햇살은 따스하고 바람은 조용해서 입가에 말(言)대신 미소가 걸렸다. 장을 담그기에 앞서 손가락을 꼽으며 날을 잡으시던 어머니가 우스웠는데 어느 결에 내가 그러했다. 어둠 속을 걸을 때 더듬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대할 때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늘었다. 옛사람들은 장 담그기 좋은 날로 12간지 중 말[午]날과 손 없는 날인 음력 9일과 10일을 최고의 날로 쳤다. 장맛이 쓰면 집안에 망조가 든다. 간장과 된장은 일 년 중 가장 큰 먹거리라 절로 달력의 음력을 살폈다. 날을 정해도 비가 온다면 허탕인데 날이 좋으니 역시나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일기예보까지 살폈던 사실은 장독대에 슬그머니 숨겼다. 보통은 음력 정월이나 3월에 장을 담그지만 나는 양력 1월 하순 초입에 장을 담갔다. 정월장은 삼월장보다 싱겁게 담을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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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수필 매운 꽃
꽃 피우고 열매 맺기 위해 대궁을 쭉 뽑아 올려 본다. 자랑스레 배동을 내밀어 보나 여지없이 뽑히거나 부러져 나간다. 오직 뿌리만이 튼실하길 바랄 뿐이다. 갖은 고생을 하지만 어림없다. 꽃으로 모으던 기를 뿌리로 내려 보낸다. 잎이 만들어 보낸 자양분으로 땅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뿌리를 감싸고 키워 낸다. 혹독한 비장함이 감돌수록 뿌리는 더 여물고 대여섯 쪽으로 세를 불려 껴안는다. 종가에서는 뿌리가 중요할 뿐 여자의 희생쯤이야 당연하다고 여기던 시대 바람이 꽃으로 피게 두지 않았다. 딸이 가진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결국 남의 식구가 된다는 게 이유였다. 대신 우리 집 기둥뿌리인 남동생을 튼실하게 키우는 데 누나들이 힘을 보태길 바랐다. 꽃 피우지 못하는 아픔일수록 내면으로 속울음 채워 넣듯 매운 향을 다져 넣는다. 말 못 할 사연을 간직하고 독기를 품었으니 벌과 나비도 불러들이지 않는다. 새나 벌레의 근접조차 막으며 뼛속까지 알싸하게 가계도를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