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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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겨울 언덕 이후
거울 언덕 이후 남수우 엎드려 우는 사람의 목덜미를 짚으면 거울이 묻힌 언덕 위였다 그 언덕에서 얼굴을 비춰 보다 화들짝 놀라 내려왔다 그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이에 부딪쳤는지 이마에 붉은 반점이 찍혀 있고 한 쪽 눈이 따가웠다 눈동자에 남은 실금들은 검은 돌이 박힌 얼음 호수인 듯 그 틈을 비집고 산란하는 빛들이 엎드린 목덜미를 환하게 뒤덮는데 나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영문을 모른 채 눈을 깜빡였다 그가 엎지른 장면이 이미 그를 저만치 앞질러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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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사라지기 산책
사라지기 산책 남수우 해진 천막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그곳은 막 잠에서 깬 눈꺼풀 같을 거야 일어나 보니 모두 끝이 나 있는 빈집들이 이어진 비탈을 따라 걷다가 네가 도착하면 그곳엔 정오의 빛과 갈색 얼룩 고양이 고무 대야 뚜껑 위에 멈춰 있어 네가 뒤집어쓴 입술이 말을 그치고야 발견된 낮잠이었지 깨진 유리 조각들이 네 발아래 흩어져 있을 거야 소리 죽여 고양이를 바라보면 갈빛 옆구리가 느리게 오르내리고 이상하지, 호흡처럼 끝이 없고 영원 같은 잠시 문득 너는 입구를 찾아 두리번거릴 거야 아무도 아니기 위한 뒷걸음질은 그렇게 시작되었다고 해 네가 빠져나가는 그늘 네가 빠져나가는 정오의 빛 네가 빠져나가는 갈빛 옆구리 다시 돌아간다 해도 만져 볼 수 없는 잠으로부터 너는 * 어느 날 찬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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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베란다 숲 기억
베란다 숲 기억 남수우 1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말란 말은 썩 괜찮았다 단추는 빛나다 사라지고 내게는 빈 들판이 남았다 그곳에서 내 뒤를 밟으며 사냥감들은 여러 날을 살았다고 한다 빈손을 보고도 말이 없던 마망 숲을 흔들며 쌀뜨물 같은 안개를 흘려보내던 마망은 어느 날 자신의 녹슨 총구를 닦고 있었다 그날 마망이 겨눈 사냥감들이 새벽 내도록 내 발 앞에 척척 쌓여만 갔다 2 내가 태어날 때 마망은 울고 있었다 그날 움켜쥔 소맷자락이 손금으로 남았는데 어린 내가 어린 숲에서 주워온 것들을 하나씩 펼쳐 보였다 마망, 여기 반짝이는 것들을 봐요 마망은 차갑게 식은 총구를 고쳐 매며 네가 어른이 되어서도 이 숲은 자라야겠구나 내가 다 자라 숲을 떠맡았을 때 마망은 노을을 끌고 맴을 돌던 기억이었다 3 여기 내 빈손을 좀 봐요 이제 이곳은 나 혼자 말하고 나 혼자 태어나는 그늘 잠자는 녹색 그림자 죽은 가지를 매달고 달리는 이파리들이 두 손을 펼쳐도 드릴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