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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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이만 원만 빌려줘
그런데 전철역 앞 대실 삼만 오천 원짜리 싸구려 모텔 방에서 죽긴 싫다고요. 강원도로 가서 적어도 십오 평 이상의, 벽지와 침대보가 새하얀 객실을 잡고 싶다고. 두껍게 썬 도미회와 소주를 먹겠다고. 죽기 직전엔 하겐다즈 녹차 아이스크림을 먹겠다고도 한 것 같아요. 한 통을 혼자, 전부 다 먹겠다고요. 김동주 씨는 내가 얘기하는 걸 듣고만 있었어요. 내가 이전 사람들을 평가했던 것처럼 그 사람 역시 나를 평가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는 불행하고 말 많은 여자 정도면 정확했을까요. 버스터미널로 가요. 속초행 고속버스를 타요. 제 말에 그 사람, 자기에게 차가 있다고 말했어요. 낡고 작은 차인데 기름이 없다고. 김동주 씨 되게 미안한 표정으로 그러더군요. ― 이만 원이 전붑니다. ― 이만 원이요? ― 네. 이만 원. 그게 제 전 재산입니다. ― 이만 원이 전 재산이라 죽으려는 건가요? ― 아뇨. 이만 원이 생겨서 드디어 죽을 수 있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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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연속좌담 '창작, 노동' 4차 〈대학(원)생 작가들의 미래설계〉
연속좌담 '창작, 노동' 4차 〈대학(원)생 작가들의 미래설계〉 기획 연속좌담 ‘창작, 노동’ 4차 대학(원)생 작가들의 미래 설계 2023년 11월호부터 2024년 2월호 사이에 총 4회의 좌담회 내용이 순차적으로 발표될 예정이다. ㅇ 회차별 구성 - 1차 : 부업이 있는 작가, 본업이 있는 작가 - 2차 : (비)정규직 교육노동자로서의 작가 - 3차 : 문학 강연 시장 - 4차 : 대학(원)생 작가들의 미래 설계 ㅇ 회의명 : 《문장 웹진》 2023년 기획 연속좌담 ‘창작, 노동’ - 4차 - 대학(원)생 작가들의 미래 설계 ㅇ 일 시 : 2023년 12월 5일(금) 14:00~16:00 ㅇ 장 소 : 예술가의 집 라운지 룸 ㅇ 참여자 : 서재진(시인), 정성우(소설가), 양기연(소설가), 임호균(미등단자), 채윤희(시인) 〈개회〉 서재진 : 저는 이번 기획 좌담에서 사회를 맡은 서재진입니다. 2017년도 대산대학문학상으로 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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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은근살짝 外
유용주 황사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왕년에 그는 어울리지 않게 외환은행 본점 조사부장 자리에 앉아 있었다 몇 올 남지 않은 머리는 제멋대로 춤을 추고 두터운 안경 너머 눈은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염소 닮았다 대차대조표나 결재 서류 대신 문지시선 시리즈 중 그리다 만 초상화나 빨간 줄 원고지에 만년필로 쓴 시가 책상을 타 넘고 음악처럼 꼬불꼬불 기어올라 넓은 사무실에 퍼져나갈 즈음, 그는 천천히 파이프에 불을 붙인다 깨끗하게 정장으로 차려입은 옷 속에는 중남미의 말뚝담배나 커피 냄새가 날 것 같지만 이렇게 엷은 황사가 세상을 덮는 초봄에는 꼬로록거리는 배를 움켜쥐고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는 김수영의 막걸리 냄새가 먼저 떠올라 그만,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이었다 아직까지 눈물샘이 마르지 않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