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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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숨겨진 보물 같은 책이야기]작은 공의 굴림이 큰 꿈을 만든다
흔히 글을 잘 쓰기 위해 필요한 것이 다작(多作),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이라는 말을 많이 보고 듣는다. 물론 이 3가지는 중요하다. 하지만 무조건 따라 하기 식의 방법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한창 글을 쓸 때의 나는 하루에 시간을 정해놓고 다 쓴 다음에는 머리로 생각만 했다. 또 많은 글보다도 필요한 글만 찾아서 확실하게 이해하려 했다. 다작, 다독, 다상량은 보편적인 방법일 뿐 개인마다 따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구절이나 생각나는 것을 책 속에 적었는데, 다른 책과 달리 적은 부분이 유난히 많았다. 모두가 아는 보석이라고 생각했던 이 책을 읽으면서 숨겨 놓았던 진짜 보석을 찾게 된 기분이었다. 작가의 생각을 훔쳐오기보다는 내가 작가가 되는 생각을 가지게 해준 책이었다. 고등학교 때의 그 문학 선생님도 이러한 기분이었을까. 내가 대학 새내기가 되었을 때, 익숙한 이름이 신춘문예 등단 모음집에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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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어떤 일요일에 전하는 안부인사
그것은 마치 일부러 숨겨 둔 것처럼 얌전하게 놓여 있었는데, 제 방 화장실도 아닌 카페의 화장실에 담배를 숨겨 둘 리는 없다고 생각해서 나는 내 멋대로 그것들을 유실물로 여겨버렸다. 그러니까 보이는 대로 들고 나와 내가 피워버렸다는 이야기다. 한 달쯤 지나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았는데 나는 문득 깨달았다. 카페가 있던 도시는 유독 보수적인 곳이었다. 여대생들이 카페에서도 쉽게 담배를 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거였다. 여대생들은 친구들도 눈치 채지 못하게 화장실에서 몰래 피우고 담뱃갑을 화장실 여기저기에 숨겨 놓았던 거다. 유실물이 아니었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대생들 사이에 소문이 났다. “거기 카페언니, 담배 피워.” 나는 아무데서나 담배를 물었고 그래서 우리 카페에 오는 여대생들은 테이블 위에 잘도 담뱃갑을 올려놓았다. 나는 담뱃갑에 이름을 적어 맡아 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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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비와 바람과 숲
비와 바람과 숲 이신조 비 도시의 광장에 비가 내리고 있다. 굉장한 기세의 폭우다. 언제쯤 시작되었는지 언제쯤 그칠지 가늠해 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 비. 무섭기까지 해서 되려 묘한 안도감을 불러일으키는 비. 그런 비가 내리고 있다. 도시가 세찬 비를 맞는다. 구석구석 흠뻑 젖어든다. 광장의 북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주상복합건물 로비의 한 브랜드 커피숍. 폭우가 쏟아지는 토요일 오전 11시 7분, 테이블은 대부분 비어 있다. 유리벽 가까이 구석진 자리에 두 여자가 마주 앉아 있다. F와 R, 그녀들은 사촌지간이고 오늘 4년 만에 만난 참이다. “비가 참…….” “그러게, 참.” 둘은 유리벽 너머 비가 퍼붓는 광장으로 시선을 준다. “잘 지내지?” R이 커피잔을 들어 올리며 말한다. “응, 나야 뭐.” F도 커피 잔을 들어 올리며 말한다. 2주 전 전화통화에서도 둘은 그렇게 말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