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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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2010년대 결산특집 연속 좌담ㆍⅠ ― 단편소설 부문
장희원 : 저는 여담이지만, 방금 사회자님께서 말씀하신 『안녕, 주정뱅이』의 「봄밤」도 분명 사람의 마음에 크게 남는 단편이지만, 다른 단편 작품들도 권여선 작가님께서 직접 지으신 『안녕, 주정뱅이』라는 제목 안에 함께 묶인다고도 생각하거든요. 등장인물들이 전부 알코올의 영향을 받고, 마음과 마음이 부딪치고, 이런 부분들이 일치하기 때문에 『안녕, 주정뱅이』는 완결성에 있어서도 성과를 이룬 게 아닐까 싶어요. 노태훈 : 그렇군요. 『안녕, 주정뱅이』도 '안녕, 주정뱅이'라는 제목의 단편이 들어 있는 소설집은 아니죠? 장희원 : 네. 그리고 저도 마음에 남는 작품이 수록된 책에 끌리긴 해요. 사람의 마음에 남는다는 건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고 큰 힘을 지닌 거잖아요. 하지만 너무 잘 쓴 단편들이 빽빽하게 들어 있는 단편집을 마주할 때면 호흡이 좀 가빨라지는 면도 없잖아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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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겨울 동화
[단편소설] 겨울 동화 강기희 1 짧은 겨울 해가 산정에 걸리는가 싶더니 바람이 거칠게 일었다. 바싹 마른 낙엽이 공중으로 흩어지자 해는 산을 넘었고, 어둠이 밀려온 골짜기엔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눈을 몰고 온 바람은 밤새 문풍지를 흔들었다. 그 소리는 새벽이 되어서야 멀리 달아났고, 바람이 그친 골짜기엔 폭설이 쏟아졌다. 날이 밝자 새들이 먼저 하늘을 날았다. 새들은 풀대궁에 얹힌 눈을 털어내며 아침을 준비했다. 새들이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며 마른 풀씨를 쪼아 먹고 있을 때였다. 책방 문이 끼익 열리며 인기척이 났다. 2 “아이구, 뭔 눈이 이리도 많이 내렸을꼬. 눈이 처마 댓돌을 다 덮었네.” 얼마나 많은 눈이 내렸는지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마당인지 알 수가 없었다. 눈으로 인해 사라진 것은 길과 마당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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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공개 인터뷰_나는 왜/자선 단편소설] 굿바이
[공개 인터뷰_나는 왜/자선 단편소설] 굿바이 윤이형 오늘이 그날이 될 수도 있다. 천사가 내려와 나를 침묵하게 하는 날. 내 모든 지혜가 끝나버리고, 모든 걸 잊은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돌아가고 마는 날. 눈을 뜰 때 그런 생각이 들어 나는 눈을 도로 감는다. 요즘 들어 차갑고 딱딱한 예감에 잠을 깨는 날이 부쩍 늘었다. 기회가 수없이 많았는데도 당신은 나를 없애지 않고 살려 두었다. 왜일까. 나는 딸꾹질을 하며 생각해 본다. 당신은 내가 모든 것을 안다는 걸 모른다. 당신을 렌즈처럼 이용해 세상을 보고 있다는 걸 모른다. 나의, 그리고 당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속속들이 꿰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어떻게 그토록 모르는 것이 가능할까. 그 까만 무지에서 당신의 희망이 자라난다. 희망은 좋은 것일까. 나는 아주 천천히 숨을 쉬어 본다.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