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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단편소설] 여름방학
[단편소설] 여름방학 윤성희 * 퇴직을 하던 날, 나는 이름을 바꾸기로 결심을 했다. 이병자. 그게 내 본명이었다.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남은 명함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도장은 버리려다 따로 챙겨 두었다. 한자로 새긴 도장도 하나 있었던 것 같았는데 책상 서랍을 뒤져도 나오지 않았다. 칫솔과 슬리퍼도 버렸다. 이만 하면 오래 다녔지. 오십이 넘은 뒤로는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생각을 해왔으므로 퇴직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다만 내 의지로 그만두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붓고 있는 적금이 만기가 되면 사표를 쓸 계획이었다. 목표 금액까지는 몇 달 남지 않았다. 퇴직을 하고 무얼 할 계획이냐고 묻는다면 세계 여행을 다닐 것이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퇴직 후의 계획에 대해 묻지 않았다. 여행이라고는 제주도에 두 번 갔다 온 게 전부였고, 그마저도 한 번은 출장을 겸한 일이었다. 나는 한 번도 어디론가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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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2015년 신인상 단편소설 부문으로 등단. 《문장웹진 2016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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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단편소설] 톨게이트
[단편소설] 톨게이트 김종옥 교육생 원부를 꽂아 넣고, 운전학원 사무실을 나왔다. 아주 잠시였지만 실내의 에어컨 바람을 쐬다가 밖으로 나온 탓인지,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습하고 무더운 공기며 따가운 햇볕 등이 새삼 견딜 수 없게 느껴졌다. 여름의 한복판이었다. 파란색 셔츠 유니폼 차림의 운전강사들은 그늘이 드리워진 건물 입구에 모여 서서 차가운 캔 음료수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면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수강생들도 햇볕이 들지 않는 자리에 서서 교육을 기다리고 있었고, 교육을 마친 수강생들은 이마 위에 얇은 책이나 접은 신문 등을 대고 빠른 걸음으로 학원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한여름의 뜨거운 직사광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두커니 서 있는 건, 운전연습장 이곳저곳에 버려진 듯 놓여 있는 연습용 노란 자동차들과 나뿐인 것 같았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나무들은 운전학원 뒤편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