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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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영감의 화수분, 도스토예프스키
영감의 화수분, 도스토예프스키 이나미 헤르만 헤세는, 도무지 삶이 비참하고 고통의 한계에 다다랐을 때, 삶 전체가 욱신욱신 쑤시는 상처로 여겨질 때, 절망만 가득하고 희망이 사라져 버렸을 때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으라고 했다. 비참한 상태에서 헤어나 고독하게 다리를 절면서도 삶을 거칠고 잔인하다기보다, 아니 삶에 대한 모든 기대를 저버렸을 때 비로소 이 끔찍하고 훌륭한 작가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게 된다고도 했다. 그때서야 우린 더 이상 방관자가 아니고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가련한 악마들의 가련한 형제가 되어 그들의 아픔에 동참하고 그들과 함께 숨죽인 채 삶의 소용돌이를 응시하며 영원히 돌아가는 죽음의 물레방아를 직시할 수 있게 된다고. 그런 다음에야 도스토예프스키의 위로와 사랑에 귀 기울이게 되며 깜짝 놀랄 정도로 깊이 있는 세계, 혹은 지옥과도 같은 세계의 놀라운 의미를 체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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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통해서본 ‘죄와 벌’의 의미(2)
이 기나긴 소설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겪는 심리적 갈등과 고통을 통해 죄에 대한 벌이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지를 생생하게 그려내는 데에 가진 힘을 다 쏟았지요. 그 결과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니체도 “도스토예프스키는 내가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었던 단 한 사람의 심리학자였다.”라고 경탄했답니다. 또한 도스토예프스키 평전을 쓴 러시아 출신의 소르본 대학 문학교수인 콘스탄틴 모출스키(konstantin Mochulskij)는 이렇게 말했지요. “도스토예프스키는 세계문학사의 위대한 기독교 작가들인 단테, 세르반테스, 밀턴, 파스칼의 옆 자리를 차지한다. 단테처럼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 지옥의 모든 단계를 통과한다. 그런데 이 지옥은 『신곡』의 중세적 지옥보다 더 끔찍하다.” 그럼 지금부터 알아보도록 하지요.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죄와 벌』에 나타난 그 벌이 도대체 무엇이며 또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 것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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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통해서본 '죄와 벌'의 의미 (1)
뒤이어 도스토예프스키는 라스콜리니코프가 그동안 이런 식의 말들을 한두 번 들어 본 것은 아니었지만, “술집에서의 이 하찮은 논쟁은 장차 사건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 그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카트코프에게 보낸 위의 편지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대학에서 쫓겨난 하층계급 출신의 가난한 한 젊은이가 경솔함과 관념의 우유부단함에 시달리던 중 공기 중에 유유히 떠다니는 이상하고 ‘온전치 못한’ 사상들의 지배를 받게 되고, 구역질나는 상황에서 빠져나오기로 결심하지요.” 요컨대, 도스토예프스키는 라스콜리니코프가 끔찍한 살인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동기가 ‘심리적 억압’ 때문만이 아니라 어떤 ‘합리적인 주장’에도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하는 그 ‘온전치 못한 사상들’이란 과연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