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96)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보호 구역
동료 미화원이 끈이 풀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더럽혀진 현수막을 걷어서 청소 도구함에 실었다. 매일 한두 개의 현수막을 폐기함에 쑤셔 넣는데,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다른 협회의 이름으로 현수막은 다시 거치되었다. “이 짓 때려치우고 현수막이나 만들어 팔면 돈이 될 것 같네.” 동료 미화원 한 명이 현수막을 폐기함에 넣으며 푸념 섞인 어조로 말했다. “괜한 소리 그만하고 이게 마지막이네. 정리하고 퇴근해야지.” 서동수는 동료 미화원이 뒷좌석에 올라타는 것을 확인하고 깜빡이고 있던 비상등을 껐다. 대형 화물차가 전방 라이트 조도를 신경적으로 들어 올리더니 클랙슨을 길게 끌며 앞지르기했다. “니미! 식겁하겠네. 저러다 대형사고 한 번 나지.” 동료 미화원은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사라져 가는 화물차에 대고 소리쳤다. 서동수는 동료에게 음료를 건네고 기어를 변속했다. 읍내 중심 도로를 벗어나자 시야가 트였다.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망뭉망
망뭉망 임주아 우리동네 더 망해도 싸다는 건물주 죽을 때를 놓쳤다는 동료 아파트를 염원하는 이웃 옆에서 7년째 책방 하는 나 시급하게 한가한 건 마찬가지 믿음 없이 거룩한 건 매한가지 잡탕밥이다 그래도 밥이지 어려운 말로, 이질적이다 그래도 질적이지 동네연구자들 아닌가 주제 : 내가 망할 것 같애? 망가지고 뭉개져도 망하지 않는 맷집 맷집도 집이다 난로 앞에 모인 망뭉망 동네 사람들 젓가락 들고 차가워지지 말자 왕뚜껑에 고딕체로 있다 후후 불어먹는다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질경이 밟기
질경이는 밟혀야 살아 밟히는 게 더 속이 편한 걸까 남을 밟는 건 영혼 한 귀퉁이를 도려내는 일 입시학원 팀장 시절 인기 없던 동료 강사를 내 손으로 해고하고 난 후부터였을까 된통 병이 났지 견딜 만하다고 믿었던 삶이 무너졌어 내가 나를 속이고 살았나 봐 질경이를 밟고 걸을 때마다 왜 밟히고 사는지 미안하고 딱해지곤 해 근데 알고 있니? 질경이는 원래 이름이 길경이래 길 위에 사는 풀이라 길경이 잡아먹을 듯 키재기하며 경쟁하는 풀들을 피해 팍팍한 길바닥 위로 나온 거지 길 위는 블루오션이거든 도시를 피해 들어온 작은 골짜기가 내겐 블루오션이야 돌밭을 일궈야 먹고사는 흙바닥 생이 내겐 숨구멍이지 어찌나 잎을 질기게 단련시켰는지 밟혀서 찢긴 구멍 한두 개쯤은 별것도 아니지 밟혀야 사는 생도 있어 아무리 밟혀도 죽지 않는 생이 있어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