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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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독자모임-언제나 다층적인 읽기를 위한 좌담 5
김영삼 : 저는 시집을 읽으면서 르네 마그리트가 생각났어요. 마그리트 그림이 감동을 주진 않지만 일종의 인식적 충격을 주잖아요. 정지우 시인의 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가슴에 와 닿지는 않아도 시인이 사용하는 전치, 병치, 치환 같은 기법들이 제게 세계를 보는 새로운 시선을 주더라고요. 김주선 : 네. 또 「불통을 어루만지다」를 보면 봄의 고집 덕분에 겨울을 뚫고 나온다고 하잖아요. 한데 시집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면 고집이라는 시어가 그다지 좋지 않게 쓰일 것 같은데 여기서는 명백히 좋게 쓰인단 말이죠. 고집이 옆에 없어서 외롭냐고 묻기도 하고요. 그런데 시인의 시선은 단순히 고집이 필요하다, 고집이 좋다, 이렇게 말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고집 대 고집이 만났을 때 발생하는 게 불통이잖아요. 때문에 그 불통을 어루만져 줄 존재가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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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원피스인문학 - 고고학자 로빈과 ‘실재’
[caption id="attachment_142069" align="aligncenter" width="640"]르네 마그리트, 망원경 René Magritte, Le Téléscope, 1963.(Menil Collection, Houston)[/caption] 마그리트의 그림을 보자. 창문 밖에 푸른 하늘과 흰 구름,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다. 그런데 창문을 열자, 그 너머에 있는 것은 텅 빈 어둠뿐이다. 저 어둠, 무명(無明)은 곧 무명(無名)이다. 우리가 상징의 세계에서 보는 것은 저 창문에 표시된 하늘과 바다이다. 우리는 상징이 투명한 기호라고, 실재의 하늘과 바다를 있는 그대로 비쳐 준다고(반영 내지 재현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상징은 그것이 재현한다고 간주하는 그 무엇, 곧 실재의 세계와 결정적으로 단절되어 있다. 실재에 합당한 이름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밀짚모자 일당이 물의 도시 워터 세븐에 이르렀을 때, 로빈이 모습을 감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