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68)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어떤 이사
어떤 이사 김성우 부러진 목을 테이프로 친친 감은 선풍기 식탁 유리에도 쫙쫙 갈라진 금 위에 테이프가 붙어 있다 여기저기 움푹팬 냉장고 때깔 잃은 스테인리스 그릇들 온통 멍 투성이였다 불에 타다 만 자국 선명한 장롱 까맣게 그을린 벽과 천장 같이 죽고 말자고 장롱 안 옷에 라이터 불을 붙였단다 삼단 서랍장 위 옹색한 화장품 몇 개, 그 옆 성모 마리아상을 바라보는 貨主의 피멍 든 눈 하루라도 멍 빠질 날 없었을 눈 밑에 퍼런 눈물 방울방울…… 날이면 날마다 남편한테 맞고 살았다는 여자가 이사를 한다 남편 모르게
-
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희곡 복숭아 심지
몸속으로 들어가고 멍 들게 한다고? 그렇게 생각해? 네 말대로 두 달 내내 발견되고 있는 그 끔찍한 몸들을 보고도 그런 얘기를 믿어? 그게 믿어져? 맞거나 다친 게 아니라, 애벌레 하나가 그렇게 만드는 거라고? 해 너는 못 믿어? 비 나는 못 믿어. 해 못 믿는구나? 비 어. 못 믿어. 해 그럼 이 얘기는 믿겠어? 비 또 무슨 얘기를 믿어야 하는데. 해 나 병 걸렸어. 비 뭐? 해 병 걸렸다고. 비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알아듣게 말해. 해 내가 걸렸다고. 그 병에. 온몸이 곪아가고, 아니 썩어가고 있어. 비 뭐라고? 해 썩고 있다고. 자. 네 눈으로 봐. 해, 자신의 몸에 든 멍을 비에게 보여준다. 해의 팔 위로 푸른 멍. 비 너 왜 이래? 해 이제 믿겨? 비 너 어쩌다 다친 거야?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축 생일
축 생일 김선우 오늘은 달이 살찌는 날 발바닥이 통통해지는 날 배꼽이 볼록해지는 날 두 주먹을 꼭 쥐게 되는 날 뜁니다 뜁니다 온몸의 땀구멍에서 잘 익은 햇살이 흘러나올 때까지 축 배꼽의 날, 하하하, 오디 빛 멍! 축 탯줄의 날, 하하하, 햇빛의 싹! 뜁니다 뜁니다 뜁니다 배꼽에서 탯줄이 자라 엄마에게 닿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