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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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독한 눈
독한 눈 문성해 젊은 여자와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수련 앞에 앉아 있다 맹인안내견은 세상에서 가장 순한 개 여자에게 수련의 자태를 수련의 언어로 짖어 주고 싶지만 그저 등줄기가 구릉처럼 순하게 굽어 있다 올해도 때맞춰 하양 노랑 연분홍 같은 순한 빛이 못물 위로 번지는데 여자여, 무슨 독을 보았는가 지천에 널린 꽃빛과 초록들이 흘러 들어가지 못하게 독한 눈을 가졌구나 개가 여자의 푹 꺼진 눈두덩을 분홍빛 혀로 척척 핥는 소리 여름이 또 한 꺼풀 얇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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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어느 폐결핵 환자의 독백
어느 폐결핵 환자의 독백 문성해 도심을 빠져 나오면 응고된 백혈구 같은 이곳 성심결핵요양원이 있지 하늘로 쭉쭉 뻗은 메타세콰이어들 사이로 일자로 쭉쭉 뻗지 못해 죄송한 사람들이 웅크린 채 느릿느릿 산책을 하지 언제나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도 위안이지 집도 당신도 지척에 둔 이곳은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멀리 떠나온 종착역인 셈, 버스만 타면, 비포장도로를 한 삼십 분 달리기만 하면 집에 닿을 수 있어 목조계단이 삐그덕거리는 그 찻집에도 당신의 굽이친 가르마 같은 그 골목길도 곧장 찾을 수 있지 그런데 참 이상하지 태양을 꼭 그만큼의 거리로 돌아야 하는 위성처럼 집과 이곳의 거리가 좀체 좁혀지지 않는 것이, 언젠가 키 큰 당신이 업어주었을 때 당신과 내가 마시는 공기가 틀리다는 것이 놀라웠지 저 일자로 쭉쭉 뻗은 메타세콰이어들이 숨쉬는 공기를 맡는다면 다 타버린 구공탄 같은 내 허파가 다시 숨쉬진 않을까 지구를 몇 천 년째 꼭 그만큼의 거리로 벌어져서 오늘도 달이 흐려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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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시·시조 「오늘은 벚꽃」 외 6편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시] 오늘은 벚꽃 문성해 봄이라고 공원인데 오늘은 외할머니가 내 안에 큰 키를 웅크리고 들어와서는 그 볼 넓은 발을 내 오목한 발에 접어 넣고 난분분 벚꽃길을 절뚝절뚝 걸으시나 오늘은 암만해도 꼿꼿한 허리로 마실 벚나무 공터에서 장구 잘 치던 외할머니의 덩더쿵 덩더쿵 거리던 눈 속만 같아라 정자나무 곁 팽팽한 벚꽃들 아래 그보다 더 늙음이 팽팽한 외할머니며 외할머니 친구분들이 장구며 꽹과리로 낮술에 묵은 흥취 깨워 낼 때 삼수갑자 돈 벚꽃들 한 올 한 올 배추 흰나비인 양 펄럭거려 어린 나는 자꾸 팔을 훼훼 내저었지 장하디장한 그 벚나무들이 경북 상주에서부터 경기도 북부하고도 먼 이곳까지 날아와 헐떡이는 오늘은 내 여섯 살 어린 방에서 산발한 채 눈 뜨고 돌아가신 그 외할머니가 들어앉아 자꾸만 이쪽으로 저쪽으로 가자가자 해쌓는다 장정 서넛은 일궈야 하는 스무 마지기 밭뙈기를 한나절에 다 멘 그 큰 손으로 내 머리채를 휙 휙 잡아채며 벚꽃들 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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