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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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우리들은 꽃인가
우리들은 꽃인가 정희성 칠십 년대 시인들 몇이 만나 얘기를 나누다가 불쑥 문정희 시인이 물었다 우리들이 꽃인가요? 나는 아득히 멀리 두고 온 별을 생각했다 생각 끝에 나는 꽃을 피운 적이 없다고 했다 벌도 나비도 날아들지 않는 이 맥 빠진 불임의 시대 좀처럼 시는 내게로 오지 않고 어느 날 문득 나는 방전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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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링 - 구두 수선공의 봄 외 1편
링 문정희 빙빙 돌고 있다 글러브 낀 손이 허공을 쿡 쿡 찔러 본다 승리를 탐색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몸을 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아니다! 이 링에서 죽을지도 모른다 모른다! 불덩이 같은 불안을 털고 있을 뿐이다 종이 울리면 광포한 천 개의 태양이 이글거릴 것이다 돌진하라 맹수여 덤벼라 쳐라 죽여라 빙빙 돌고 있다 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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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칸타타의 밤 - 사자를 위하여 외1
칸타타의 밤 문정희 그날 밤, 음악회에 나타난 잉어 내 뼛속까지 스며들어 오, 맙소사 앙상히 드러난 실핏줄 나이와 몸무게 남편과 자식들…… 심지어 자랑스럽다는 듯 열거했던 이력들 갑자기 통속이 되어 버리는 문학과 학위들 날렵한 허리 젊은 힘줄 물결치는 파도와 아름다운 금기와 위반들과 결국 지상에 두고 떠날 저 많은 별들 사이로 그날 밤, 음악회에 돌연히 물살쳐 온 잉어 단숨에 내 뼛속의 푸른 시베리아를 녹인 칸타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