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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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산책과 가을의 일
[에세이] 산책과 가을의 일 박주영 오랜만에 동네 산책을 했다. 여름이 시작되고는 햇빛이 사라진 밤 산책을 하다가 그나마도 열대야 때문에 멈춘 지 오래되었다. 오늘은 해가 뜨기 전 일어났고 스탠드를 켠 책상에 앉아 소설을 썼다. 어느새 창밖이 밝아지는 걸 보다가 해가 완전히 뜨기 전에 바깥으로 나가 걷기로 했다. 산책은 어슬렁거리며 그냥 걷는 것이지만 소설가의 산책에는 생각이 없을 수 없다.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목적이었다면 달리기를 했을 것이다. 나는 산책과 걷기를 구분해서 다이어리에 기록한다. 산책이 바라보고 생각하며 이동하는 것이라면 걷기는 건강이라는 목적을 가장 염두에 둔 움직임이다. 여름이 아니라면 산책은 주로 오후나 해질 무렵에 한다. 늦게 자고 오전에만 일어나도 뿌듯한 사람이라 일어나자마자 소설을 쓰고 쉴 즈음이 대개 그 시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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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우리의 마지막 문장
작가소개 / 박주영 200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실연의 역사』와 장편소설 『백수생활백서』, 『냉장고에서 연애를 꺼내다』, 『무정부주의자들의 그림책』, 『종이달』, 『고요한 밤의 눈』, 『숲의 아이들』이 있다. 《문장웹진 2022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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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파라다이스 아일랜드
파라다이스 아일랜드 박주영 * 내가 재인 K 41을 만난 것은 11월 11일이었다. ― 반가워요. 재인이에요. 기다리고 있던 그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나는 명함을 건넨 뒤 바로 용건에 들어갔다. ― 익명의 기록으로 남으실 건가요? ― 아직 생각 중이에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대개 아직 생각 중이다. 삶과 죽음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아무리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해도. 그는 살아오면서 겪은 갖가지 사건들을 나에게 들려주었다. 아, 네. 그러셨구나. 그렇죠. 그럼요. 네, 그럴 거 같아요. 그런 거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의 진행에 방해가 되지 않을 만큼만 호응을 하면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첫날 그가 하는 이야기가 중요하다. 그것들은 대개 그의 이번 인생에서 가장 평범하면서도 즐거웠던 순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