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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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야식
야식 박진규 나는 아파트 단지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공원의 남자 화장실에서 아내를 찾아냈다. 남자 화장실의 문은 열려 있었다. 나는 두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지켜보았다. 머리가 희끗희끗해지기 시작한 고수머리의 남자가 때 낀 세면대를 붙잡고 거울을 보았다. 수도꼭지를 잠그지도 세게 틀지도 않아 물줄기는 작은 소리를 내며 배수구로 흘러들었다. 운동을 나왔다 들렀는지 반바지 차림에 셔츠의 목둘레와 겨드랑이는 땀으로 펑 젖어 있었다. 남자는 노랗게 질린 얼굴이었는데 눈물은 흘리지 않았으나 눈이 붉었다. 남자는 몸을 돌려 내 쪽으로 한두 걸음 걸어오다 멈추었다. 강파르게 훌쭉한 볼은 볼품없었고 턱 끝의 염소수염이 지저분했다. 다만 입매는 좀 웃는 듯 부드러웠다. 무슨 까닭인지 알 도리는 없지만 그는 살짝 웃어 보였는데 어딘지 비겁한 사람으로 보였다. 문득 내 얼굴이 이 남자와 닮았을지 궁금하게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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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은행 강도
은행 강도 박진규 그의 운동화에 비에 젖은 은행잎이 들러붙었다. 그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으나 뒤돌아서 우리를 살펴보지는 않았다. 호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담배에 불을 붙이고 다시 앞서서 걷기만 했을 뿐이었다. 입술이 바짝 타는 우리와 달리 그는 가끔씩 하늘을 보며 여유롭게 담배연기를 내뱉었다. 날씨가 쌀쌀해서 금방이라도 양손이 닭발처럼 오그라들 것만 같은 그런 오후였다. 비는 아침나절에 멎어 하늘은 파랗고 맑았지만 우리는 하늘 따위나 쳐다볼 여유가 없었다. 어느 순간, 그가 다시 걸음을 멈추더니 뒤를 살폈다. 다행히 우리를 눈여겨보지는 않았고 신발에 들러붙은 은행잎을 바닥에 비벼 털어내지도 않았다. 그저 잠시 제자리에 서 있다가 계속해서 동일한 보폭으로 걷기만 했다. 그 와중에 많은 은행잎들이 신발에 들러붙었다가 다시 떨어졌다. 하지만 나는 속지 않는다. 녀석의 걸음걸이가 교묘하게 빨라졌다는 사실을 이미 눈치 챈지 오래였다. 정말이지 능숙한 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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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국수
국수 박진규 1 그 국숫집으로 말하자면 눈발이 하얗게 날리던 겨울에 찾아 들어간 곳이었다. 성탄절은 지났지만 새해가 밝기 전이었으니까 쓸쓸함과 설레는 마음이 휘휘 섞이는 그런 때였다. 날씨는 제법 쌀쌀해서 입을 크게 벌리고 숨을 들이마시면 차가운 바람이 목구멍으로 잘도 넘어갔다. 나와 어머니가 들어간 국숫집은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포장마차는 아니었다. 그 시절의 여성치고는 키가 컸던 어머니가 고개를 숙인 채 들어가야 하는 작은 구멍가게였다. 가게의 출입문은 미닫이문이었고 작은 유리창에는 ‘국수’라는 글자가 붉은 페인트로 쓰여 있었다. 이제는 사라진 동네 목욕탕 출입문에 쓰여 있던 ‘남탕’ ‘여탕’이라는 글씨체와 비스무리한 붓글씨체였다. 국수를 먹으러 갔던 그날은 어머니와 목욕을 하고 돌아오던 길이었으니 내가 여탕에 다니던 시절인 대여섯 살 무렵이었을 거다. 여탕에 대한 기억은 탕 안에 감도는 부연 수증기처럼 희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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