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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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시는 느낌의 현재에서 문득 출발하는 것
박형준 : 시집에서는 문인들의 비화가 많이 다루어지고 있는데요. 그런 것들을 시로 표현하시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이시영 : 특별한 의미라기보다는 지나간 시대의 인물들, 현대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공동체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입니다. 이문구, 조태일, 송기원 등이 모두 그런 인물입니다. 박형준 : 좋은 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시영 : 좋은 시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유종호 선생의 ‘각자의 방식대로 좋은 것이다’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반복해서 읽을 수 있는 현대문학 양식은 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반복은 리듬에서 오는 것이겠지요. 각 시마다 시인의 호흡이 행간에 스며서 이루어지는 것이 리듬이라고 생각합니다. 박형준 : 선생님께서는 “시심(詩心)이란 침묵, 나아가서는 ‘함묵의 큰 질서’를 자아와 세계 속에서 발견하는 것”이라고 하셨는데요? 함묵의 큰 질서가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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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 작년에 창작과 비평사를 그만두셨는데요, 오십칠 세의 아침에 그는 갑자기 실직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아주 천천히 일어나 겨울로 향한 보석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이 「실업」(『아르갈의 향기』, 2005)이라는 시가 눈에 띕니다. 느낌이 어떠신지요? 이시영 : 두 가지입니다. 허탈감과 해방감을 만끽한다는 것인데, 그것이 ‘보석 창문’의 이미지로 과장되어 나타난 것 같습니다. 박형준 : 《내일을 여는 작가》에 실린 약력이 재미있습니다. ‘현재는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로 월요일에 한 번씩 안성 캠퍼스에 내려가 강의하는데 나머지 날들은 완전 백수임’이라는 글이 있던데요. 이시영 : 재미있던 에피소드는 박남철 씨가 그 글을 보고 ‘불완전 백수’라고 정정해주었던 일입니다. 박형준 : 작가회의의 산 증인이신데요. 그동안 작가회의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올해가 31주년인데요. 이시영 : 작가회의와의 인연은 25살부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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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밤
밤 박형준 눈길 위 수목들이 알코올을 뿜어대는 밤이었다 나이테에서 입김을 내뿜으며 달려간 말발굽들 별이 된 밤이었다 공중에 홀려서 수목들은 밤하늘로 잠겨들고 있는 밤이었다 하늘의 얼음장을 깨뜨리는 수목에서 노래가 떨어지는 밤이었다 너무도 살고 싶은 밤이었다 수목 속에서 작은 손가락이 힘줄을 튕겨서 나는 소리 적막한 눈길에 나무가 우는 소리 내 슬픔 하나하나가 당신을 위한 찬양인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