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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반려
채 다물지 못한 이빨 사이로 침이 뚝뚝 떨어진다. 막 부패가 시작 된 고깃덩어리-그것만이라도 건질 수 있어 다행이다. 종일 헤매고 뒤지고 다닌 통에 바닥난 기력에 피까지 흘려 영 속도가 붙질 않는다. 하지만 냉기어린 아파트 단지 지하 보일러실에 있을 마리-지금쯤이면 무섭고 걱정이 되어 홀로 끙끙대고 있을-를 생각하며 놓칠세라 고기를 힘껏 물고는 걸음을 재촉한다. -늦었어.냄새로 먼저 나를 알아차린 마리가 조금 뚱하게 말한다. 꽉 물어 이빨자국이 난 고기를 마리 앞으로 던져주고 나는 비척비척 구석으로 가 등을 말았다. 마리는 고깃덩어리에 가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았다. 평소 같았으면 내가 먹이를 놓자마자 달려들어 먹었을 텐데, 하는 궁금증이 일려는 찰나 마리가 고개를 번쩍 들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피 냄새가 나는데, 저 고기 냄새는 아냐.내 곁에 털썩 주저앉은 마리는 내 몸을 킁킁거리다 오른쪽 뒷다리의 상처를 발견했다. 나름 숨긴다고 깨끗이 핥고 왔는데. 눈은 잘 보이지 않아도 코만큼은 아직 생생한 그녀였다. 그녀는 부드러운 혀로 내 상처를 가만가만 핥아주었다. 피가 묻어 엉킨 털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어루만졌다. 다친 부위가 따끔거리긴 했지만 따뜻하고, 안락했다. 피곤이 몰아치면서 잠이 들락 말락 몽롱해졌다.-오늘따라 길가에 버려진 과자 한 조각도 없더라. 멀리까지 나갔지만 허탕이었어. 돌아오는 길에 음식물 쓰레기통 옆에서 잠시 쉬기로 했지. 그 때 한 여자가 음식을 버리더니 운 좋게도 뚜껑을 닫지 않고 갔어. 주위를 살피다 냉큼 올라타 보이는 것을 닥치는 대로 물었지. 먹을 수 있는 건지 없는 건지, 고를 겨를도 없이. 그리고 구석 골목으로 냅다 튀었어. 한 숨 돌리고 입 안에 있는 걸 내뱉고 찬찬히 살피는데 지나가던 사람-비틀거리며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얼굴이 불콰한 사내-가 나를 발견하고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다가오더군. 짖어댔더니 번들거리는 눈으로 주위를 덜러보다 돌멩이를 잡고는 훽 던졌어. 빗나갔어. 정신없이 비틀대며 던졌으니 그럴 수밖에. 재빨리 그나마 큰 조각을 물고 뛰는데 그 때 정통으로 맞아버렸어.마리는 조용히 상처부위로부터 시작해서 내 몸 구석구석을 핥았다. 마치 내가 마리를 처음 본 날 그랬던 것처럼. 슬프고, 아프고, 미안하고, 고마운 감정들이 혼란스럽게 뒤섞인 눈을 하고서. 한동안 조심스레 핥던 마리는 내 곁에 꼭 붙어 몸을 웅크렸다. 드문드문 보이는 거친 살결이 부르르 떠는 게 느껴졌다. 가을이 벌써 가나보다. 내가 그것을 아는 것은 떨어진 낙엽 때문도 아니고 부적 짧아진 낮 때문도 아니다. 냄새. 조금 아릿하고 씁쓰레한 그것으로 겨울은 자신을 알려온다. 아직 겨울은 오지도 않았는데 마리는 벌써부터 추운가보다. 한겨울이 되면 그 땐……. 마리는 두 눈 모두 잘 보이지 않고 몸뚱아리에 듬성듬성 분홍빛 살갗이 흉하게 드러난 암캐다. 내가 그녀를 만났던 날은 올해 여름으로, 한창 무더웠던 시기였다.시원한 곳을 찾아 나무가 우거진 아파트 뒷산으로 올라갔을 때 어디선가 깨갱깨갱 하는 소리가 들렸다. 잔뜩 겁에 질려 억눌린 소리. 나는 살금살금 그 쪽으로 다가갔다. 두 남자가 포대자루에서 개 한 마리를 꺼내 밧줄에 동여매고 있었다. 개는 깨갱, 켕- 나오지 않는 소리를 쥐어짜고 있었다. 목에 밧줄이 걸리고, 그 밧줄은 나무에 걸렸다. 목이 졸려서, 개는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 못했다. 처절하게 그응 그응 하는 작은 소리만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두 남자는 긴 막대기를 들고-. 나는 눈을 돌려버렸다.쉬지 않는 타격음과 점점 가늘어지는 그응 거리는 소리, 드문드문 낄낄거리는 소리가 계속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역겨운 노린내가 코를 찔렀다. 털이 타고, 살이 타고, 생명이 타는- 절로 몸서리가 쳐지는 역겨운 냄새가. 낑낑거리는 소리가 거세졌다.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든 순간 산 밑에서 삐용삐용 하는 소리가 들렸고 두 남자는 달아났다. 이상한 옷을 갖춰 입은 남자 둘이 곧 산 위로 올라왔다. 그들은 나무에 걸린 것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줄을 끊고는 남자들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뛰었다.그들은 아마 그 개가 죽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지만 나는 들을 수 있었다. 미세한 숨소리. 까맣게 타다시피 했지만 작게 그르렁 거리는 동족의 목소리. 살려달라는 애원, 살고 싶다는 비명. 나는 조심스레 그녀를 물고 자리를 떠났다. 점점 작아지는 그녀의 숨소리에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늘이 까매지고 별들이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며 하염없이 그녀를 핥고 또 핥았다. 몇 번의 고비를 넘기고 살아났지만 아름다운 크림빛이었을 그녀의 털은 다시 자라나지 않았다. 맑고 깨끗했을 그녀의 눈망울도 다시 세상을 담지 못했다. 벌써 추위를 타는 그녀를 안쓰러워하고 있을 때 갑자기 밝은 빛이 눈을 확 찔렀다.-아, 이 개새끼들이 정말……. 훠이! 훠이!불빛에 이어서 긴 나무막대기가 나와 마리의 사이를 마구 휘저었다. 갈팡질팡하는 마리를 데리고 우선 보일러실을 빠져나갔다. 잔인하도록 밝은 그 불빛은 그 자리에 서서 집요하게 우리 쪽을 응시했다.-아파트 단지에 떠돌아다니는 개들 많다고……. 위생이 걱정된다, 아이를 물면 어떡하냐, 집값 떨어진다 말들이 얼마나 많은데. 에잇, 귀찮으려니까.경비는 퉤, 바닥에 침을 뱉고는 뒤돌았다. 달이 하늘의 중앙에 뜬 시각이다. 어디서 잠을 자나. 갑작스런 긴장감이 풀리면서 몸이 으스스 떨렸다. 예전에 살던 족발집 뒤 골목은 짝귀를 가진 덩치 큰 개에게 뺏기고, 그 전에 살던 근처의 폐교는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이 들이닥쳐 이것저것 재고 부수길래 도망쳤고, 그 전에 살던 곳은…….-아.그 전에 살던 곳은 집,이었다. 따뜻했던. 행복했던. 배고프지 않게 밥을 주고 목욕도 시켜주고 산책도 하고. 주인님들과 함께 웃을 수 있던.한순간이었다. 그 웃음이 사라지는 건. 여느 때처럼 산책을 하고 돌아온 뒤, 갑자기 온 몸이 가려워졌다. 박박박 발톱으로 아무리 긁어보아도 가려움은 가시지 않았다. 털은 쑥쑥 뽑혀나가고 피딱지가 흉하게 몸을 덮었다. 조금만 움직이면 상처가 터져 피와 고름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리고 나는 버려졌다.병이 생긴 후로 이주 즈음 후에 오랜만에 주인님은 내게 목줄을 맸다. 간만의 외출로 방방 들떠있던 나였다. 여느 때처럼 산책을 하다가 주인님은 공원 벤치 앞에서 ‘움직이지 마!’, ‘기다려!’라고 하고는 사라졌다. 기다렸는데. 등이 정말 가려웠지만 긁지도 않고, 배고팠지만 주인님이 ‘먹어!’라고 안 했으니까 지나가던 사람이 소시지를 놓고 갔어도 안 먹고 기다렸는데. 그런데 오지 않았다. 해가 지고 별이 뜨고 다시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는데도 오지 않았다.그제야 갑작스레 많은 것들이 머릿속으로 휘몰아쳤다. 사라진 미소, 신경질적인 표정, 아무리 애교를 부려도 배를 긁어주지 않는 손, 제일 먼저 달려가 반겨도 더 이상 안아주지 않는 팔. 적어지는 밥, 뜸해지는 산책, 머물지 않는 눈길. 왜 몰랐을까. 아니 사실은, 지금도 솔직히 기다리고 있는 내가 진심으로 묻고 싶은 건, ‘왜 그랬어요?’ 달빛이 비치는 담벼락에 몸을 기댄다. 이리저리 널브러진 낙엽을 모아 덮으니 나름 따뜻한 잠자리다. 추위에 떨던 마리가 생각나 특별히 더 많은 낙엽을 쌓는다. 더 좋은 잠자리를 알아보겠다고 해놓고 이렇게 초라한 잠자리를 겨우 구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흘러 부랴부랴 마리를 숨겨놓은 아파트 뒤 화단으로 향했다.종종걸음으로 제법 넓은 찻길을 건너려는데 많은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무엇인가를 빙 둘러싼 채 팔짱을 끼고 서서 무심히 보기도 하고 저희들끼리 낮게 이야기하기도 하고 몇 번 밝은 플래쉬가 터지기도 했다. 지나치려는데 사람들의 발밑으로 숭숭 털이 없는 맨 살이 보이는, 쭉 뻗은 말라빠진 다리 하나가 보였다. 무언가에 홀린 듯 나는 그쪽으로 다가갔다.-과속한 거 아니라니까요-. 어련히 피할 줄 알았지. 아, 이 개새끼가 눈이 멀었나 왜 안 피하고 서서! 이렇게 개들이 마구 싸돌아다니니까 이런 일이 발생하지. 원, 재수가 없어서-.말라 갈비뼈가 드러난 몸. 얼마 없는 털-그 마저도 붉게 젖은. 그나마 있던 초점마저 완전히 풀려 각기 다른 곳을 보고 있는 두 눈. 제각각 다른 각도로 꺾인 다리.-뭐야, 이 개는? 친구야?웅성거리던 사람들 중 한 명이 나를 발견한다.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고개를 들리고 나에게 집중한다. 잔뜩 호기심어린 표정이다.-아니, 이거 아까 보일러실에 있던 개들이잖아? 에이씨, 가지가지로 귀찮게 하네.아까의 그 경비가 투덜거리며 마리의 뒷다리를 잡아 올려 까만 비닐봉지에 휙, 던져 넣는다.-어어, 이 개가 왜이래!나는 사납게 짖어대며 경비에게로 달려들었다. 마리는, 좁은 데 갇히는 거 싫어한다. 어두운 것도 싫어하고 무엇보다 혼자 있는 거 정말 싫어한다.무언가 둔탁한 것이 내 머리를 두어 번 세게 내려쳤다. 아까의 손전등이었다. 어지러웠지만 바짓가랑이를 물은 이빨의 힘을 빼지는 않았다. 여기저기서 잔인한 플래쉬가 터졌다. 힘이 빠질 대로 빠져 결국 나는 누군가의 발길질에 의해 나가 떨어졌다. 세상이 빙빙 돌았다. 자꾸 비틀댔지만 안간힘을 다해 검은 비닐봉지로 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만큼은 그 많은 사람들이 조용했다.비닐봉지에서 마리를 간신히 꺼내 바닥에 눕히고 나도 그 옆에 누웠다. 흐린 눈을 돌려 하늘을 보니 둥그런 보름달이 떠 있었다. 저 보름달은, 환하게 웃는 주인님 얼굴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더 보고 싶은데 자꾸, 눈이 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