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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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밤
아직 한밤중인 것 같이 어둡기만 한 현실을 말이에요. 어디선가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어요. 나는 베란다로 나가 망연히 밖을 내다보아요. 구급차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어요. 경찰들이 나와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군요. 아기를 안고 뛰어내린 여자의 이야기로 그 밤에 아파트 전체가 술렁이고 있었어요. 시간의 흐름을 잊은 채 나는 밤새도록 아기를 안고 자장가를 불렀어요. 아침이 되자 남편은 안방 문을 열고 평소처럼 방 안을 둘러보아요. 나는 아기를 안고 거실로 나와 남편을 바라보죠. 오래전부터 이 집에서 남편을 기다린 것처럼 그렇게요. 《문장웹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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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밤
밤 박형준 눈길 위 수목들이 알코올을 뿜어대는 밤이었다 나이테에서 입김을 내뿜으며 달려간 말발굽들 별이 된 밤이었다 공중에 홀려서 수목들은 밤하늘로 잠겨들고 있는 밤이었다 하늘의 얼음장을 깨뜨리는 수목에서 노래가 떨어지는 밤이었다 너무도 살고 싶은 밤이었다 수목 속에서 작은 손가락이 힘줄을 튕겨서 나는 소리 적막한 눈길에 나무가 우는 소리 내 슬픔 하나하나가 당신을 위한 찬양인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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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밤꽃밤꽃밤꽃 - 돌밭 외1
밤꽃밤꽃밤꽃 박성우 하필 어머니가 자취방에 오신 날 서른두 살 영호는 몽정을 했더란다 부랴부랴 속옷 갈아입고 밤꽃 핀 팬티 몰래 빨려다가 들켰더란다 크윽 놀라 벌어진 입도 입을 막은 손도 똥그래진 눈도 팬티를 놓친 다른 손도 그대로 멈췄더란다 아직 한 번도 못 해봤냐는 질문에 어어 형, 영호는 배시시 웃기만 했는데 근데, 형은 몽정 안 해요? 아참 새신랑이지 같이 걷다가 쭉 빠진 여자라도 볼라치면 영호의 몽정이 내심 걱정되기도 하여 피식피식 실없이 웃기도 했는데 새벽녘 끈적끈적한 잠에서 깨어 허벅지에 흘린 식은 밤꽃을 닦아낼 영호, 생각이 왠지 안쓰럽게 산보길 따르는 밤 언젠간 숨 가쁘게 터질 밤꽃밤꽃밤꽃, 뜨겁고 순결한 꽃숭어리 터지는 밤들이 얼른 영호한테 갔으면 좋겠다고 강나루 별빛이 소곤소곤 귀엣말을 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