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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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생명의 전화
생명의 전화 백아온 나의 사랑은 자살을 선언한 사이보그1) 사이보그는 다시 태어나도 리듬 없이 산다 그래서 내 사랑 날마다 무지개 노끈이 걸려 있는 나무 앞에 선다 노끈이 품은 색색의 가능성 내가 거듭나면 사랑해 줄래? 픽션도 즐겁지 않으니 나의 사랑은 심장을 부풀리고 싶겠다 풍선껌처럼 질겅질겅 씹다가 아스팔트에 길게 늘어져 누군가의 발바닥에 붙어 얼마간 미행을 즐기겠다 차갑지 사이보그는 죽을 수 없게 설계됐다 나의 사랑에게 쥐여 준 에너지 빈방은 폭발할 수 없어서 네 몸을 먼저 통과한다 검은 베일 너머로 전화벨이 울린다 신이 꼭 선해야만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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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유리의 마음
유리의 마음 백아온 선생님은 내 얼굴에 흰 천을 씌워 주며 말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온 편지는 함부로 뜯어 보지 말아요. 50분짜리 모래시계가 뒤집혔다. * 열차는 어딘가를 지나치고 있었다. F열 13번 좌석에 앉아 소설의 도입부를 읽었다. 작가는 첫 페이지에 이 글은 20년 뒤, 사랑하는 딸에게 바치는 일기라고 했다. 작가는 딸이 자신을 ‘엄마’라고 불렀던 순간을 환희와 슬픔에 빗대서 쓰고 있었다. 마지막 줄엔 자기가 불행한 것 같다고 쓰여 있었다. 내가 소설을 읽는 동안 열차는 바다와 숲과 절벽을 지났고 식물원에 다다랐을 때 쏟아지는 잠. 그때 선생님은 원래 있던 모래에 모래를 덧대었다. 먼 과거를 쓸어내리는 모래. * 아이가 엄마에게 고래는 어떻게 울어요? 물었다. 고래는 푸우- 하고 울어. 푸우- 푸우- 푸우- 그렇게 고래 울음을 따라 우는 엄마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