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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괴물의 투시-백은선 <<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을 읽고
시집을 배달받은 뒤,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이 있다. 포장 상자를 열어 주문한 시집을 확인하는 일. 시인의 세상이 아무 문제 없이 시집으로 도착했는지 바라보게 된다. 그 세상이 설령 불안정하고, 생각과 달라 보여도. 도착한 순간만큼은 아끼고 끝까지 응시하게 된다. 포장지에 감싸진 이야기를 뜯어내기 전까지. 그 속에 다정이 들어 있는지, 아픔이 담겨 있는지 몰라서. 시집을 하나의 세상으로 바라본다면, 백은선의 시집 대다수는 삶의 다정함과 삶의 냉혹함을 함께 보여주는 견딤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그녀의 시가 주로 들어내는 삶을 견디는 방식은 침묵과 미룸이다. 시집 <<비신비>>, <<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 이 두 삶과 세상에는 수록된 대부분의 시가 연작의 형태를 보인다. 특히 <<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은 제목부터가 그녀가 말하는 침묵을 제목에서부터 이야기하고 있다.-<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 中 그네 아래는 하얀 꽃이다 폴란드 폴란드 새가 날아가는 순간 새는무언가 놓고 가는 거 같고 하얀 것은 깊이를 알 수 없다고 믿었다불타는 나의 폴란드 아름다운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 웃고아이들은 손과 손을 겹쳐 흔들리지 않는 탑을 만들지 소리 없이 날개를 접는 물속에서 영원을 구할 때 너는 눈과 코와 입을 잃었고 그 뒤로 떠내려간 입이 부른 노래가 가장 긴 이름이 되었다고 하는데, 물속에서 영원을 구할 때찌를 드리운 노인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이 당신이 결국 갖게 될 미래라고, 그 말은 둥근 포물선을 그리며 퍼져나갔지, 그것을 절망이라고 부르려 했지만 젖은 종이에 쓰인 말은 알아볼 수 없고 알아볼 수 없기에 완성되는 폴란드 폴란드계속 그네는 흔들리고 꽃은 하양을 무력한 것만이 유효하다는 믿음은 손쉽게 이루어지면서도 부서지기 때문에 너는 그럴듯한 기분으로 태도를 지키기 좋았지, 시 안에서 꽃이 다뤄지는 방식으로, 미래처럼, 절망하기 위해 태어난 포즈는 늘 호응받기에, 너는 줄곤 들여다보았지, 들여다보지 않는 순간에도 들여다보고 있다고 그것이 바로 흔들림이라고 적었지 손과 손을 놓고 멀어지는 연인들처럼다리 위에 매달린 기쁜 숨처럼 -49~51p 위 시는 표제작이자, 연작시인 <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 세 편 중, 여는 시의 일부다. 시는 놀이터에서 화자가 ‘그네 아래’를 흰 꽃이라 주장하며 ‘폴란드’라는 인물을 연속으로 호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놀이터라는 장소는 쉽게 말하는 유년과 어린이 상징이기 때문에, 화자가 놀이터에서 생각하는 폴란드는 아이이며, 그 아이는 삼 연에서부터 날아가는 새와 동일시된 존재로 묘사된다. 머물러 있지 않고, 화자 곁을 떠나는 존재로. 아이가 부모 혹은 어른의 곁을 떠난다는 것은 대체 적으로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첫 번째는 아이가 성장하여 한 사람이라는 개별적인 사람으로 독립한다는 뜻이고. 또 다른 하나는 요절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위 연작 중 여는 시 부분은 후자의 의미가 쓰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불타는. 나의 폴란드”라 구절로. 이렇게 ‘폴란드’를 망자라는 이미지로 바라볼 때, 첫 연의 “그네 아래는 하얀 꽃이다”라는 구절과 뒤에 나오는 노인과의 대화와 물속의 이미지가 다르게 보이게 된다. 보통 죽음과 관련된 하얀 꽃을 생각하면, ‘국화꽃’을 떠올리고는 한다. 장례식장에서 누군가를 애도하기 위해, 올리는 꽃이기에. 그렇다는 것은 첫 연에 나오는 ‘그네 아래는 하얀 꽃이다’라는 구절은 ‘폴란드’를 일상에서도 애도를 끝내지 못한다는 것을 뜻을 은유적으로 내포한다. 그렇기에 뒤에 나오는 “하얀 것은 깊이를 알 수 없다고 믿었다”라는 애도의 끝을 알 수 없다고 화자는 말한다. 그만큼 폴란드를 사무쳐서 살아내야 하는 화자의 그리움이 덤덤하고 담담하게 응시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또한 <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 여는 시에서 중요하게 사용되는 이미지 중에는 물도 있다. 특히 위 시에서는 화자의 미련이 물로 형성되어 있다. “물속에서 영원을 구할 때 너는 눈과 코와 입을 잃었고 그 뒤로 떠내려간 입이 부른 노래가 가장 긴 이름이 되었다고 하는데, 물속에서 영원을 구할 때”라는 구절처럼. 그러나 시는 미련으로만 정서를 가두지 않는다. 구하지 못한 죄책감과 미련. 그 뒤에 밀려오는 삶의 애착. 생의 의지. 어쩌면, 더 폭넓고 밀도 있는 애도를 이미지화하여 보여준다. 대표적인 이미지로 노인과 관련된 물의 이미지를 들 수 있다. 노인은 물속으로 “찌를” 드리우고 부드럽게 말한다. 그리고 그 노인의 목소리와 말은 ‘둥근 포물선을 그리며 퍼져나가겠지’라고 화자는 묘사한다. 그러나, 화자가 묘사한 이미지가 단순 낚시라고 치부하기에는 뒤에 오는 “젖은 종이에 쓰인 말을 알아볼 수 없고”라는 문장의 깊이와 묘사 그리고 앞에서 말한 미련을 온전히 이야기할 수 없기에 시의 정서의 결로 이미지를 해석하면, 단순 낚시의 묘사가 아닌 물귀신 넋풀이. 다른 말로는 넋걷이 굿이라고 바라볼 수 있다. 넋걷이는 일종의 굿이다. 특히 물귀신의 넋을 푸는 넋 건지기는 물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물귀신의 한을 풀어주며 천도하는 굿이다. 그러나, 화자가 넋을 푸는 존재는 ‘폴란드’라고 호명하지 않는다. 그저 ‘너’라고 호명할 뿐. 그렇다는 것은 굿으로 보이는 애도는 ‘폴란드’와 함께했던, 시간. 그 안의 수많은 ‘너’이자 ‘나’ 화자 자신의 죄책감과 미련함을 풀어주는 행위로 해석할 수 있으며, 이는 뒤에 나오는 연작에서는 ‘폴란드’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독자에게 와닿는다. 하지만, 위 연작은 화자가 완전히 그리움과 죄책감을 내려놓지 않는다. 그저 사무친 채로 살아가기. 돌보지 않으며, 그저 마음에 내려놓으며 화자는 살아낸다. 그리고 그 과정을 세 편의 연작으로 풀어낸다. 이는 애도를 일상에서 그리고 지속적으로 하게 된다는 것을, 형식적으로 표현하여 화자의 마음과 애도의 일상성을 말하는 시인의 주제 의식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전달한다. 이런 시들은 그녀의 위 시집을 포함한 다른 시집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데, <<비신비>>라는 시집의 표제이자 <<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의 수록 시인 <비신비> 역시 천천히 걸어가는 애도와 삶의 방식을 전달하기 위해 연작 형태를 구연했고, 위 시 역시 성공적으로 연작을 사용했다. -<비신비> 中 신의 아이는 태어나서 울었다그래야 한다고 배워서 검은 것은 멀리하고 되도록 식사시간에 늦지 않았다인간을 흉내내는 것이 재미있어서 어머니,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한 가지 일을 이뤄내는 건 어떤마음으로 가능한 일인가요? {중략} 존재 자체를 모르니 아쉬워할 수 없구나 유한과 무한 사이가 이토록 멀어서신의 기록실의 종이가 너무 커서 -68~69p -<비신비> 中 그 애는 늘 소란스러웠다 복도 끝에서도 목소리가 들렸다 아름답다 아름다워 누가 저렇게 빛나는 숨을 모아 사람을 빚었을까 나는 질투에 눈이 멀어 탄식하며 한숨을 내뱉었다 재잘재잘 해변을 구르는 조약돌처럼꺄르르 수런거리는 한밤의 나무들처럼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건 너를 위해 생겨난 말 * 기다리는 일은 길어지면서 그냥 하나의 상태이자 의식이 되었다 언제쯤 지나갈까? 듣고 싶다는 마음이보고 싶다는 절박이 이렇게 투명해도 괜찮은 걸까 내가 아는 건 비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슬퍼 나는 눈을 뜨는 순간 빛의 세계에서 탈락했어 얼굴을 가릴 수 있도록 긴긴 그림자를 덮고 잠들었다 이것이 나의 최선이라는게 * 나무 뒤에 숨어 속으로 숫자를 센다 하나에 빛 둘에 너하나에 창 둘에 너하나에 섬 둘에 너 너는 천국과 지옥에 양발을 한 쪽씩 담그고 있어 내내 바라왔던 것을 마침내 발견했는데어째서 기쁘지 않은 걸까? 시커먼 연못에 비친 얼굴 위로 돌을 던졌다망가지는 것이 보기 좋아 이게 나고너에게 어울리지 않아 또박또박 적히는 나의 새벽 연필 끝이 뾰족해질수록 뭉툭 해지는 마음만 가득하다* {중략} 길어지는 그림자를 때어내 커튼 뒤에 숨겨 두었어 신비와 아름다움이 어떻게 결속하는지 다 알게 되었기에 더이상 배가 고프지 않았다 망가진 것은 망가진 채로망가진 것은 망가진 채로 듣고 있어?죽어도 들을 수 있지? -70~74P <비신비>는 국어사전에 존재하지 않는 단어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의 내용과 한자만으로 제목을 짐작해야 한다. 따라서 제목의 풀이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非신비 ‘신비하지 않다’로. 신비하지 않다는 것은, 신비롭지 않다는 뜻. 연작의 시작은 신의 아이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아이는 처음으로 배운 것은, 우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의 아이는 과연 ‘무엇일까’라는 질문으로 이어 나가게 된다. 하지만, 우린 읽으면서 눈치를 차릴 수 있다. 어쩌면 처음부터 신의 아이는 결국 하나의 사람. 하나의 인생이라는 것을.우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행동이 우는 것이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대게, 자발적으로. 때로는 살아야 하기에. 산부인과 산과 의사들은 갓 태어난 아이를 울리기도 한다. 이를 통해 첫 연부터 우리는 신비롭지 않은 비신비가 곧 신의 아이인 우리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신의 아이가 곧 신이 아닌 거처럼. 신의 아이가 신의 아이들 사이에서 신비롭다고도 이야기할 수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연작의 제목인 <비신비>는 이런 삶의 모순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 여는 시의 결미와 그 뒤를 따르는 또 다른 <비신비> 역시 그렇다. 여는 시 <비신비>의 결미는 다음과 같다. “신으로 죽기 일 분 전에 세팅해놓은 것이지만. 인간으로 죽을 때까지 찾아내지 못했다. 존재 자체를 모르니 아쉬워할 수 없구나”라는 구절로. 이 <비신비> 연작에서 화자 역시 누군가를 또 죽음으로 이별했다는 것을. 여는 시 <비신비>의 마지막 연인 “유한과 무한 사이가 이토록 멀어서. 신의 기록실의 종이가 너무 커서”라는 구절로 암시한다. 그러나 이후 이어오는 연작에서 “너는 천국과 지옥에 양발을 한 쪽씩 담그고 있어”라는 구절로. ‘너’라는 인물이 결국 죽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게 만든다. 하지만, ‘너’라는 인물이 결코 누구인지는 모른다. ‘너’라는 인물이 자식인지, 아님 누군가의 자식이었던 사람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천국과 지옥의 사이인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그를 그리워하며 살아낸다. 그러면서도 이런 그리움과 죄책감을 “또박또박 적히는” “새벽 연칠 끝”으로 적어 내려간다. 결국 감정이 “뭉툭. 헤지는 마음만 가득”해도. “커튼 뒤에 숨겨 두었”다는 그림자와 그 그림자가 되기 전까지 수많은 어두운 시간 속 상처를. 화자는 살아낸 이야기를 시인의 손끝에서 완성하여 시로써 이야기한다 그렇게 시인이 화자의 상처를 들치면서, 시를 쓰고 독자에게 보낼 때 시인 자신의 상처 역시 함께 나올 때가 있다. 이는 백은선의 시에서도 간혹 보이고, 연작에서는 특히 더 많이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상처들이 결코 그저 아프지만은 않다. 그저 시인이 자신을 용기 내어 들쳐내거나, 상처를 글로 감쌀 때 보여지는 정서가 한 사람에게 다가가 공감을 일으키게 한다. 그리고 그런 점을 잘 활용한 시가 백은선의 시 <진짜 괴물>이다. -<진짜 괴물> 전문 우리는 동그랗게 앉아 눈을 감았다첫번째 사람이 입을 열었다 각자가 생각하는 괴물에 대해 이야기하자너부터 시작 괴물은 말야 초록색이고 이빨이 아주 커다음괴물은 말야 손톱이 길고 냄새가 나다음괴물은 말야 밝은 걸 싫어하고 검은 피를 흘려다음괴물은 말야 시끄럽게 기침을 하고 사람을 먹어 다음 괴물은 말야.......괴물은 말야....... 긴 침묵이 지나고하나둘씩 눈을 떴을 때 그애는 울고 있었다 너 왜 울어?모두가 그애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흙을 파내려가는 뾰족한 손톱을 생각해 상처 입은 무릎을, 배고파 잠이 오지 않는 매일 밤의 뒤척임을, 빛이 머리를 관통 할 때의 저린 통증을 생각해 시간은 약이 아니다 생각에는 마침표가 없기 때문에 빛과 소리는 끝이 없고 단지 이동할 뿐이기 때문에 시작된 것이 계속되었다밤은 길고 밤은 영원해서그치지 않았다 동그랗게 모여 앉은 우리가 기울어질 때영문도 모르는 채술렁이며 눈물이 번질 때 누구도 다음, 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46~47p괴물. 시에서도 말하지만, 우리가 쉽게 보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존재들. 시는 그런 괴물의 특성을 나열한다. 동그랗게 모여 앉아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괴물은 망야 시끄럽게 기침을 하고 사람을 먹어. 다음. 괴물은 말야.....” 그렇게 나열을 말 줄임표까지 사용해가며 쭉 이어 나간다. 그러다가 “긴 침묵이 지나고 하나둘씩 눈을 떴을 때. 그애는 울고 있었다.”라는 구절부터 시의 분위기는 환성의 존재에 대한 나열에서 우리의 이야기로 변주된다. 지금껏 나열했던 이야기들이 결코 한 사람. 혹은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의 이야기였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시에서도 더는 말하지 않는다. “시작된 것이 계속되었다. 밤은 길고 밤은 영원해서. 그치지 않았다. 동그랗게 모여 앉은 우리가 기울어질 때. 영문도 모르는 채. 술렁이며 눈물이 번질 때. 누구도 다음. 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라는 말로. 서로가 서로에게 환상의 괴물로 상처를 주고 환상의 괴물이라 상처를 받았기에. 그러나 백은선과 수 많은 화자는 그 상처가 <진짜 괴물>이든 <비신비>든 <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이든 무엇인지 정확하게 직선적으로 말해주지 않는다. 상자를 덮은 채 열지 못한 사람처럼 그저 침묵으로 살아냄의 언어를 독자와 나눌 뿐. 때로는 침묵이 더 다정하고 더 아플 때가 있다. 백은선의 시가 딱 그러하다. 다정한 괴물의 언어. 그래서 그녀의 시는 모든 감정을 쏟아붙지 않는다. 침묵하고 응시하고 마주보고. 그 미학이 독자가 스스로 시집이든 상자를 열어보며 자신의 상처를 응시하게 만든다. 한 사람의 세계를 그저 바라보며. 조금씩 자신을 들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