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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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비세계
비세계 변선우 들판에서 닭들이 원을 그리며 돌고 있다. 그것은 눈동자가 되고 있으므로, 나를 응시하고 있다. 자꾸 들여다보고 있다. 나는 비세계에 있으므로, 우리 사이에 커튼이 있다. 닭 한 마리는 돌다가 탈주하고 있다. 숲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있으므로, 닭 한 마리가 덩달아 좇아가고 있다. 숲속이 조금 더 뻑뻑해지고 있다. 커튼은 세차게 펄럭거리고 있으므로, 나는 들통 나고 있다. 닭들의 눈은 모두 마흔세 개. 아니, 팔십하고 여덟 개……. 숲속에서 전쟁은 개시되고, 세상은 평면이 된다. 도무지 정지하지 않는 평면. 평평해지지 않는 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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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만화경 - 바깥의 세계 외 1편
만화경 변선우 이팝나무 두 그루 사이 ‘김’은 앉아 있다 온몸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하늘, 을 감각하다 눈 감는다 벤치가 편안해진다 나뭇가지가 쩍, 하는 소리와 흔들린다 비염 앓는 ‘김’은 재채기를 하려다 만다 눈물이 다소 흘러내리고 있으나 손수건으로 훔친다 이팝나무 꽃이 ‘김’의 정수리에 떨어진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결코 ‘김’은 고양이 한 쌍을 본다 암수거나 아니어도 상관없는, 그 한 쌍이 고요하게 지나가는 걸 본다 적요를 등에 태우고 땅의 끝으로 향하는데, 아무도 모른다 아직까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으므로 이팝나무 꽃이 다시 한 번 정수리에 떨어진다 톡, 톡, 이팝나무가 소리 없이 우는 것이란다, 어느 서정 시인이 말했던 것처럼 그사이 자전거 두 대가 지나갔고 노후한 봄과 가을이 얼굴 맞대고 떠나갔다 어쨌든 막, 떨어진 꽃이 정수리에 있던 꽃을 ‘김’의 무릎으로 떨어뜨린 것이었다 이건 중력이 요구한 일인가 정수리에 있었던, 사정을 무릎으로 옮겨 온다는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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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세계 변선우 1 세계에 구멍이 났다. 너무 많은 가시 때문에 너무 많은 구멍이····. 신께서 힘이 없어 거대한 후라 크레피탄스*를 심으시다 떨어뜨리는 바람에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생겨버렸다. ···이제 무엇이 흘러들까. 인류는 땅에다 용기를 묻고 있다. 땅콩만 한 믿음이 땅콩만큼 새겨지고 있다. 완고하던 유산들이 하나둘 가루가 되어 가는 기분···. 세계는 가장 먼저 음악을 잃었으며 유행은 도둑처럼 찾아오는데 2 바람이 쪼개지고 해가 불어온다. 하늘이 넘어지고 땅이 쏟아진다. 의사는 손목을 긋고 정원사는 목을 매다는 거다. 제정신이 자꾸만 제정신을 해산하는 거다. 나는 그 한가운데에서 시를 쓰고 있다. 분수에 빠진 생쥐와 분수에 빠진 또 다른 생쥐는 껴안는다. 분수는 정말 크고 생쥐들은 정말 작아서 방법이 이것뿐이라는 듯 껴안지만 냄새를 맡지 않는다. 후회와 모의가 없다. 믿음만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