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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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독자모임 - 책방곡곡 제주 시옷서점 2편 - 우리가 맞닥뜨리는 세계의 소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이 몸은 고양이야』 같 사소설 느낌이 있었고, 조지 오웰의 소설 『카탈로니아 찬가』의 소설을 대하는 방식이 비슷하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홍임정 소설가는 탈북한 사람들을 취재해서 소설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앞으로도 기대가 됩니다. 허유미 : 외부에서 내부를 보는 눈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부에서 내부를 볼 수 없잖아요. 소설가는 외부에서 내부를 볼 수 있어야 하는데, 홍임정 소설가는 제주라는 외부에서 지나온 삶과 같은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있어서 소설을 흥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사진이 삶의 실패와 좌절이 있어서 날카롭고 거센 문장이 있을 수 있는데 외부에서 내부를 보았기에 담담하게 표현한 것 같습니다. 표제작인 단편 「먼 데서 오는 것들」을 보면, 롤랑 바르트의 책 『밝은 방』에 나오는 말을 언급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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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서사적 기예의 세 가지 풍경들
그러나 결국 남이 장군의 진짜 묘를 찾아낸다. 바로 남이섬의 무덤은 위묘이고 화성의 무덤이 진묘였던 것. 그러나 여기서 ‘나’는 새로운 깨달음을 경험한다. 곧 남이 장군에겐 두 개의 무덤이 필요하다는 것. 이 깨달음은 남이 장군의 진짜 묘의 존재를 알려 준 후배의 ‘무지’와 대비되며 뜻깊은 대목으로 다가온다. “내가 그랬잖아요. 거기 갔다 오면 남는 게 없다니까.” “두 개의 무덤이 남았어.” “무슨 말이에요?” “그냥 남이 장군에게는 두 개의 무덤이 필요해. 진짜와 상관없이.” 남이 장군에게 두 개의 무덤이 필요하다면 소설가에게도 두 개의 무덤이 필요할 터. 실상 작가가 궁극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도 이것이다. 즉 위묘는 소설가의 묘이고 실제의 묘는 소설가로서 현실에 자리매김되는 묘쯤이 될 테지만 양자의 구분은 실상 그리 중요치 않다는 자각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요컨대 소설가 ‘나’는 여기서 허구와 현실이 대등하다는 점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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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커버스토리 7월호 복원과 기록_역사가와 소설가 : 김숨
풍길은 스무 살이 되기 이전, 즉 열세 살에서 스무 살까지 만주에서 경험했던 일이 자신의 모든 삶을 파괴했다고 말하지만, 고향으로 돌아와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도 그녀에게는 결코 위안이 되거나 따뜻하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2차 가해’의 시간이 만주에서 보낸 7년보다 열 배나 많은 70년 가까이 그리운 고향에서 잘 아는 사람들을 통해 지속된 것이다. 김숨은 정처 없이 떠돌며, 끔찍한 고독에서 삶을 지탱하는 풍길의 현재를 통해 과거를 말하는 소설의 구성으로 그 시간들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더디고 느리게 지나가는 현재의 구덩이에 가득 고여 있는 슬픔과 고통을 말해 주듯이 김숨은 현재형의 문장을 쓰며, 풍길의 고독을 천천히 따라간다. 6) 김숨, 『한 명』, 현대문학, 2016, 152쪽. 역사가는 사료의 문장과 역사가의 방식으로, 소설가는 문학의 문장과 소설가의 방식으로 시간의 흔적을 따라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