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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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겨울 숲의 기원
손가락 끝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이따금 반짝이는 것은 내 눈 속의 숲인가 네 눈 속의 눈인가 이 눈길을 걸어 숲으로 갈래요 이왕이면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 누운 짐승의 표정으로 빈 가지 사이에서 얼어터진 겨울의 손등을 쓰다듬으며 나무의 긴 잠처럼 숨소리도 없이 지나온 발자국이 사라질 때까지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밤의 무덤처럼 아름다운 곡선을 얻을 때까지 나는 나의 행복을 빌지 않아요 안녕을 바라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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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다회
숲에서 마을로 마을에서 숲으로 이어지는 계절 지나서 속속 무성해지는 이들과 만나서 우리는 불을 켭니다 검고 흰 얼굴들 보이고 이것을 다회가 아니라 여기는 사람 없어요 그리고 말했습니다 둘러앉기까지 많은 계절을 지나왔다고 조금 전까지 우리는 혼자였는데 옆에 있는 사람 언덕을 넘어왔대요 끊임없는 오르막과 내리막이라 말하고 나는 언덕에 흐르는 물과 물에 비친 돌을 집었습니다 그것이 언덕을 착수하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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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시·시조 「손자국」외 6편
박새 부리이고 싶어졌고 무너진 축대를 간신히 붙잡고 있는 목련 나무를 스쳐 가는 바람이고 싶어졌고 극락전 앞 뒹구는 매미 허물이고 싶어졌다 바랜 단청 흐린 색으로 머물다 지워지고 싶었고 문살 나간 창호지 구멍이고 싶었고 그늘도 없는 폐사지에 머물다간 구름이고 싶었다 요사채에서 병든 사내가 밟은 절 마당이고 싶었고 승복 말리는 빨랫줄이고 싶었다 그렇게 여러 달 서성이는 발자국이었다 머리 긴 비구니가 되어 그늘 많은 도시로 돌아왔다 발가락이 꼬물거렸다 냇물에 대나무 족대로 송사리 몇 마리 건져 올리며 고무신에 넣었다 송사리가 내내 발 냄새 맡으며 뱅뱅 돌았다 산그늘 나눠 가진 참나무는 물속에서 흩날렸다 간간이 옆집 개가 킁킁거리며 내 발 냄새를 맡았고 가다가 다시 와서 발 냄새를 또 맡았다 그늘을 쫓아 앉은 발가락이 꼬물거렸다 어둠을 짚고 가는 별이 까마득해서 솟을대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돌멩이를 던졌다 돌멩이 맞은 별이 까딱까딱하다가 툭, 뒤꼍 조릿대 숲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