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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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난쟁이 시인
난쟁이 시인 임곤택 당신, 난쟁이 시인 양편에서 쏘아진 화살처럼 바쁘게 오가는 당신의 왼편에 하이마트 미아점이 있고 오른편 노인들은 한 개비의 담배를 두 번으로 나눠 피우고 당신은 한 번의 빗질로 한 가지 생각을 한 가지 생각으로 한 번의 가을을 다 쓸어 담네 그리고는 총총 건널목을 건너지 양팔을 늘여 은행나무와 버스들을 한데 묶고 모자 속에서 흰 비둘기를 꺼내어 날리지 당신은 삽화 속의 인력거꾼 쏘아진 화살보다 빠르네 당신, 난쟁이 시인 새벽부터 쉬지 않고 킁킁거리거나 두리번거리는 당신의 장화 속에 빗자루가 꽂혀 있네 당신을 뒤쫓아서는 당신을 만날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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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도토리 시인
도토리 시인 서수찬 예술가인 양 늘 모자만 쓰고 다닌다고 겉모양 든 시인이라고 욕하지 마세요 옆에다가 늘 막걸리를 끼고 산다고 술주정뱅이 시인이라고 수군대지 마세요 세상에는 밀가루 묵에 아예 우리 이름을 도용하는 사람도 많고요 우리의 시를 표절해서 돈 버는 사람도 수두룩하더라고요 도토리 키 재기라고 외면하는 아주 조그만 삶이라도 찾아가서 이 가을에는 온몸 가루가 되어 꼼꼼히 노래할래요 우리 시는 혀로 읽으면 아주 제 맛이 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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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어떤 시인 外
김해자 어떤 시인 그가 시를 몰랐더라면 이 한새벽에 전화줄 붙잡고 울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랑하지만 않았더라도 사랑하고도 시를 업으로 삼지만 않았더라면 사랑하고 사랑했어도 함께 살지 못하는 여자 눈물로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토록 가난하지만 않았더라도 이 세상 꽃구경 나왔을지 모를, 이미 지워져버린 아이와 함께 꽃그늘 아래서 노래하다 곱게 자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난 때문에 사랑하는 여자 속절없이 저당잡힌 그는 할 줄 아는 게 시밖에 없어 시를 쓴다 쓸수록 가난해지는 게 시라서 시의 집에서 시를 먹고 시를 마시고 아프게 울다 토해낼 게 없어 홀로 시를 토한다 부레옥잠 떠돌며 사는 것이 운명이다 뿌리 있어도 뿌리내리지 못하고 축축한 생의 자리 흘러다녀야 한다 부패가 그의 양식 폐수로 터질 듯한 복수찬 배 부레삼아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더러운 곳이 그의 거처 더러움 걸러 푸르디푸른 목숨 피워낸다 연보랏빛 향기 뿜어낸다《문장 웹진/20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