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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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거대한 사랑의 기록
출판사 핀드는 복원 과정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몇 곳의 도서관을 수소문했고, 어렵사리 「두 애인」이 발표된 문예지 『신민』 36호(1928년 4월)를 찾아 그 누락된 내용을 메웠다. 현재로선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그간 근대 여성 작가의 단행본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다. 더욱이 근대 여성 작가의 단행본을 복원하다니, 아마 최초의 사례일 것이다. 한국 여성 작가의 계보를 되짚고 한국문학의 보배로운 유산을 발굴한 뜻깊은 작업이라 평하지 않을 수 없다. 사진2. 『생명의 과실(복원본)』(핀드, 2024) 표지 2 『생명의 과실』 속 한 편 한 편을 찬찬히 읽어 나갈수록 그 속에 담긴 겹겹의 사유는 가슴속에 거센 파문을 일으킨다. 사는 내내, 쓰는 내내 치열한 내적 전투를 멈추지 않았던 김명순의 작품은 더없이 처연하고 동시에 굳세며, 무엇보다 깊다. 작품을 통해 보건대, 여러 불행의 증거에도 김명순은 결코 지치거나 꺾이지 않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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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주황
주황 신민 열 살이 채 되지 않은 나는 여름 해변에 누워 있었다. 아버지는 양손에 모래를 담아 내 몸을 덮어 주었다. 바람 없는 날이어서 파도 소리는 한 음밖에 내지 못하는 악기처럼 단조로웠다. 유령 게가 집게발로 귓불을 건드리더니, 안쪽의 깊은 어둠을 훔쳐보곤 슬금 물러났다. 나른했다. 모래로 만든 이불 아래에서 심장이 느슨하게 뛰었다. 피는 천천히 헤엄쳤고, 뼈는 나보다 먼저 졸았다. 이것들이 다 유리가 된단다. 아버지가 말할 때 나는 거의 잠들어 있었다. 눈을 감고, 유리로 만든 드레스를 입은 상상을 했다. 그 드레스는 크고 작은 천 개의 유리 조각으로 만들어졌다. 어디에서 보는지에 따라 각각의 조각들이 금세 표정을 바꾸므로 누구도 이 드레스의 온전한 생김새를 모를 것이다.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새 드레스가 태어날 테니까. 깨어났을 땐 모래 이불이 헤집어져 있었다. 무방비하게 드러난 배와 발가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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