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문장(0)
글틴(3)
-
글틴 > 소설 숙주나물 1
또 그 녀석들에게 맞았다가는 몸이 남아나질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몇 분 후, 나는 황국 신민 선언을 하였다. 이종관 선생님은 얼굴에 언짢은 기색이 역력하였다. 하지만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마지못해 신민 선언을 하시었다.어제 일로 옆 반에 있던 모두가 없어졌다. 학생들은 강제로 퇴학을 당했음이 분명하였고, 선생님은 시퍼런 순사들에게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고 있음이 분명하였기 때문이다.잠시 옆 반에 있던 친한 녀석들이 얼마나 있는지 세어보던 찰나, 신민 선언 후 이어지는 고요한 정적을 깨고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었다. 바로, 세워진지 얼마 안 된 우리 학교의 1대 일본인 교장, 미즈노가 들어온 것이었다.미즈노는 양 옆으로 째진 눈과 깐깐한 얼굴, 앙칼진 목소리로 말을 뱉어내고 있었다.“昨日あった不吉な日について話したいと思う。(어제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에 대하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側面のクラスの担任教師、助成仕事は、朝鮮独立運動に参加したと見なされ、精密な調査を受けている。
-
글틴 > 소설 학급왕조실록
하니, 신민 황소망이 감히 말하길, “내가 어찌 너의 말을 믿겠나?” 하니, 우의정이 말하길, “어찌 나를 못 믿는단 말인가. 내 너희를 당장 공석으로 남아있는 정관직에 임명 할 것이니라.” 하니, 신민 정현산 감히 말하길, “그러면 내 너의 말을 믿고 너와 함께 하겠다. 단, 내일까지 나를 정관직에 임명 시켜 달라.” 하니, 신민 황소망이 말하길, “나도 현산이와 같은 생각이네.” 하였다. 이에, 우의정 말하길, “내 내일 당장 당신들을 정관직에 임명하겠네. 대신에 나와 뜻을 같이 해주게.” 하니, 둘 말하길, “자네가 우리를 정관직에 임명시켜 준다면야 뭘 못하겠나?” 하였다. (사신(史臣)은 논한다. 쓰기는 이리 쓰나 말투가 상당히 불손하였으니, 이 뭔가 불길한 의미인지라.) ○현조 1년 5월 20일(기해) / 우의정 한반서가 신민 황소망과 정현산을 각각 공조판서와 예조참판에 제수하길 청하니 상이 허락하였다.
-
글틴 > 소식 > 커뮤니티 <제국과 문학> 강좌를 소개합니다:)
잠재력을 식민지 문제로부터 점화해 보려 한다. 1강 점령과 식민: 식민지, 어떻게 볼 것인가2강 천황제 국가의 증여 신화 ―『대일본제국헌법』의 언설 공간 (혹은 특강, 모더니즘과 파시즘 ― 최재서의 Order: 미하라 요시아키/ 일본 동지사대)3강 언어와 국가, 그리고 생명 ― 식민지말 조선어(문단) 해소론의 사정4강 무상의 시간과 구제의 시간 ― 끝나지 않는 신체제, 종언 이후의 동아시아 역사상5강 제국 일본과 번역 (없는) 정치 ― 루쉰, 룽잉쭝, 김사량, ‘아큐(阿Q)’적 삶과 주권6강 전향과 저항의 생명정치 ― 크레올 혹은 이중언어의 장소론7강 국가의 기예와 그 사상적 구도 ― 메커니즘으로서의 관료국가, 식민지의 추억8강 비인(非人)의 땅, 후기식민지로부터의 앎과 실천참고문헌황호덕, 『제국과 문학 ― 식민지말 문학의 언어, 생명정치, 테크놀로지』, 역사비평사, 2010 (미간행근간/PDF자료로 제공).와타나베 나오키, 황호덕, 김응교 편,『전쟁하는 신민
사업광장(0)
자료광장(5)
-
문예지 > 시조시학 시조시학 2012년도 봄호
가람 선생의 대표적 성과를 들자면 1926년 동아일보에 「시조란 무엇 인가」라는 논문을 발표한 이후 「율격과 시조」(1928, 동아일보), 「시조와 그 연구」(1928, 학생), 「시조원류론」(1929, 신생), 「시조의 현재와 장래」 (1929, 신생), 「시조는 창(唱)이냐 작(作)이냐」(1930, 신민), 「시조는 혁 신하자」(1932, 동아일보), 「시조의 발생과 가곡과의 구분」(1934, 진단학 보), 「시조의 기원과 형태」(1934, 조선일보), 「시조 감상과 작법」(1936, 삼천리), 「시와 시조」(1938, 시학), 「시조론」(1947, 조선교육), 「고시조의 감상과 비평」(1949, 문예), 「시조의 혁신」(1956, 학도주보), 「시조창작 론」(1957), 『일석회갑논문집』 등의 시조 관련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한 국의 전통시가인 시조의 학문적 창작적 기틀을 세우고 계승 발전시키 는데 기여했다면,(박영우, 「가람 이병기 문화 공간의 활성화 방안 연구」, 『한국문예 창작
-
문예지 > 포지션 [인민이란 무엇인가]가 말하는 것
반공 이데올로기가 건재한 오늘날, 이제 남은 것은 희미해졌던 ‘국민’, 그 옛적의 ‘황국신민’으로서의 국민―신민臣民을 호출하는 것뿐이다. 더 정확히 말해, 그것은 국가의 이름으로 인민을 호출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인민은 국가 아래에서만 존재한다는 국가 이데올로기, 인민이 있기 전에 국가가 있다는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표현하는 것이 바로 ‘국민’이라는 말이다. 국가의 존립과 이익이 없이, 개인의 존립과 이익이 없다는 집단적 이데올로기와 안팎에 존재하는 종북 세력을 척결해야 한다는 철벽같은 반공 이데올로기가 연쇄적인 상호작용을 이루어 낼 때, 단일한 실체로서의 ‘국민’은 비로소 호출될 것이다. 실제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경제적) 이해관심과 결합한 집단주의다. 오늘날의 평균적인 사람들, 그 ‘무기력한 인민’은 제 이해관심에 충실할 뿐이다. 나를 잘살게 해준다면, 민주주의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
문예지 > 서정시학 서정시학 2014년도 여름호
‘신시(thơmới)’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판 코이(Phan Khôi, 1887~1959)가 1932 년 2월에 하노이의 《Báo Đông tây(동서 신민)》의 〈Tập văn mùa xuân(신춘문예)〉에서 새로 운 형식의 시 「옛사랑(Tình già)」을 선보였을 때 이후부터이다. Lại Nguyên Ân, 「Phan Khôi với phong trào thơmới(판코이와 신시운동)」, 〈Quátrình hiện đại hóa văn học Nhật Bản vàcác nước khu vực văn hóa chữHán(일본과 한자문화권 국가들의 문학현대화 과정)〉논문집, Đại học Khoa học xãhội vàNhân văn (ĐHQG Tp. HCM), 2010.3. 2) 원문: “Tản Đàlàngười thi sĩđầu tiên mởđầu cho thơca hiện tạ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