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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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특집좌담]한국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소설부문)
▶ 정 : 편혜영의 『밤이 지나간다』와 윤대녕의 『도자기 박물관』은, 이 작가들이 비슷한 얘기를 계속 반복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평가들이 없지 않죠.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조금씩 차이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편혜영 씨 같은 경우는 놀랄 정도로 섬세해지고 있는 거 같고요. 윤대녕 씨 같은 경우는 유려한 문체라든지, 문학이 결코 버릴 수 없는 낭만주의적 정서 같은 것들이 익어 들어가면서 무언가 정경이 만들어지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목록 바깥에서, 정태언의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작품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러시아 유학을 갔다가 돌아와서, 데뷔한 시기가 사십 대 중반쯤 되는 늦깎이 작가의 첫 소설집입니다. 이분이 러시아 문학을 공부해서 러시아 문학의 전통이라든가 하는 지점에 깊이 들어가 있습니다. 유학 생활 자체도 없는 길에 돌진하는 과정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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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인공자연의 경계들
맑스가 물신숭배를 두고 ‘사물들 간의 환상적 관계 형식을 마치 실재하는 사물인 양 나타나게 하는 마법’(K. 맑스, 『자본론』)이라고 했거니와, 이미 우리가 현실이라고 규정하는 사고와 기준 자체는 이와 같은 원리를 갖는지도 모른다. 실체가 아닌 것을 실체인 양 믿는 우리의 믿음이 아니면 화폐가 물신이 될 수 없는 것처럼, 현실 속의 분할선과 견고한 듯 보이는 세계 역시도 우리의 믿음 체계의 반영이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실재를 현실로 치환해 버리거나, 현실과 현실 아닌 것을 엄격하게 나누는 우리의 통상적인 감각이 실은 어떤 마법과 최면의 결과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화폐 공동체의 안과 밖, 인공자연의 안과 밖 모두, 이우현의 「길 위에서-함금사니 일화1」 속에 있다. 3. 다시 기억하게 될 자연들 이처럼 근래 우리 문학의 상상력은 주로, 자명하게 여겨져 온 것들에 대한 회의와 맞닿아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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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이인용 자전거
[기획/특집] 겨울에 쓰는 여름 이야기 이인용 자전거 편혜영 아직 아이이던 시절, 나는 아빠의 자전거에 홀딱 빠져 있었다. 은색의 커다란 몸체, 몸체를 단단히 휘감고 있는 기름때 낀 체인, 아빠가 의자에 앉혀 주어도 내게는 닿지도 않던, 내 신발만큼이나 커다란 페달, 내 작은 엉덩이에도 앉으면 불편하게 느껴졌던 터무니없이 작은 안장과 불쏘시개같이 커다란 브레이크를 갖춘, 구식 자전거였다. 동네에서 아빠 말고 그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종점 옆의 슈퍼마켓 아저씨뿐이었다. 아빠는 언제나 퇴근이 늦었지만 여름철이면 그 시간에도 자전거를 타기에 충분할 만큼 해가 남아 있어서 퇴근해 돌아와서는 씻지도 못하고, 옷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나를 자전거에 앉혀야 했다. 나는 여름밤이면 더위를 먹은 듯 방바닥에 달라붙어 뒹굴고 있다가 아빠와 자전거를 타고 동네 마실을 다녀오고 나서야 잃었던 기력을 되찾아 단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