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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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수필 살창
올해 연초, 새로운 일에 야심 차게 도전했으나 결과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였다. 작년부터 요건을 맞추느라 동분서주했으니 허허로움이 컸다. ‘괜한 도전을 했나, 과한 시도였나.’ 젊은 나이가 아니니 값진 경험을 했다며 쉽게 덮어 버릴 용기도 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한국 정원 기행』이라는 책에서 ‘독락당’을 보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이곳에 와서야 몸과 마음을 닦아 더욱 수신하라는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제대로 독(獨)에 빠진다. 때마침 휴대폰이 방전되고 외부 세상과는 소통이 끊겼으니, 안분지족의 삶을 들추어 보면서 내 삶의 이정표도 점검하는 귀한 시간이다. 예상치 못한 결과를 수용하지 못하고 부정하기에 바빴던 나에게, 선생이 따끔한 일침을 놓았고 덧붙여 격려와 위로를 해 주듯 훈풍이 어깨를 쓸어 준다. 스님처럼 하안거 동안거를 거듭한 은자의 삶에 비하면 나의 고는 참으로 사사로운 것이었다. 독락당 마당을 에워싼 담에 살창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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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로빈슨크루소와 그 후예들[3]
“크루소는 서아프리카 기니아의 흑인 노예 밀무역 상인이고, 사탕과 연초 플랜테이션의 경영자이며, 동남아시아로부터 중국을 거쳐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모험적인 무역상이었다. 그야말로 서유럽을 중심으로 하여 식민지로, 생산과 무역을 통한 지배망을 형성하는 제국주의의 전형적인 인간이었던 것이다.” 박교수의 결론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영국의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를 비롯해 여러 작가 및 비평가들이 함께해 온 견해이다. 물론 문학작품을 작품에 담긴 세계관 또는 이데올로기만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고전에 대해 ‘읽지 마라’로 나가는 평가는 대개 이런 입장에 서 있기 일쑤다. 글자 그대로 자신의 판단을 독자에게 강요하는 게 아니라면, 세간의 평가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대한 일종의 경계로서 귀 기울일만하다.), 이데올로기라는 측면에서 보면 <로빈슨 크루소>는 이러한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비판을 생산적으로 받아들이며 이 작품을 다시 쓴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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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삐에르 밤바다
파우치를 꺼내, 담배를 말 준비를 하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갈 수밖에 없었고, 탁자에 놓인 콜드브루 두 잔과 자몽주스와 루이보스티가 식어 갈 동안, 『중력과 은총』과 〈백설 공주〉 엽서, 그리고 삐에르 밤바다의, 마지막 악필의 문자 증명, 실패한 유서인지 아닌지, 테스트 윤이 받아 쓴, 옮겨 적은, 번역한, 서로의 입술의 부들거림과 혀의 마찰소리에 반응하며, 이차정 씨의 무언의 읽기 지휘 속에서, 함께 읽은, 사력을 다한 필사의 텍스트, 이건 삐에르 밤바다의 목소리 글과 얼마나 닮았고 다른지, 멀어지고 있는지, 이 모든 언어의 잔해 주변에 떨어진, ‘LOOK OUT’ 연초 가루의 떨림을, 우리는, 아직 이차정 씨는 우리가 아니지만, 이차정 씨는 우리가 될까, 테스트 윤이 분홍색 혀를 내밀어, 담배 필터에 침을 능숙하게, 테스트 윤의 침이 삐에르 밤바다의 침과 섞여 화학 반응을 일으킨 적도 있을 것이다, 바르는 것을, 누군가의 셀피를 보듯, 셀피에 담긴 심연을 응시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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