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4,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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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밝은 산책 - 오! 라일락 외 1편
네가 향하는 곳 우산을 버리고 폭우를 맞으며 한 발 두 발 허밍은 산책 산책은 허밍 그런 말로 우리는 우리를 얼마든지 기만할 수 있다 나의 깊고 더러운 숲속을 걷다가 버려진 자동차에 몸을 싣는다 그건 내가 결정한 미래 시동은 가까스로 걸리게 되어 있다 그리고 돌진 돌진 돌진 신호등에 어떤 불도 들어오지 않은 아주 짧은 순간 나는 어떻게 하면 아름다워질 수 있을까 생각하다 공중전화 박스를 박았다 단 한 번의 굉음 녹슨 수화기가 떨어져 대롱거렸고 그곳에서 너의 허밍이 가느다랗게 들려왔다 괜찮아 괜찮아 우리는 눈을 떠야 보이는 세계에 갇혀 있었다 숲의 한가운데서는 언제나 깊고 깊은 도시가 발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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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소설 비가 오면 새들은 어디로 갈까
백 원짜리는 일정하게 탁탁탁, 오십 원짜리는 그보다 약하게 틱틱, 오백 원짜리는 백 원짜리보다 무겁게 툰, 하는 소리를 냈다. 만약 오십 원짜리와 백 원짜리를 넣었다면 틱탁, 오백 원짜리 하나와 백 원짜리 두 개를 넣었다면 툰탁탁, 하는 식이었다. 게다가 동전을 내는 학생 중에 간혹 장난을 치는 녀석들이 있었는데, 그런 녀석들은 일이 초 뜸을 들이다가 백 원짜리나 오십 원짜리를 교묘하게 섞어 재빨리 집어넣었다. 한눈에 알아보긴 어려웠지만 분명히 부족한 금액이었다. 웬만한 기사들은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지만 원칙적인 성격의 나는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내버려 두자니 녀석들이 나를 물로 보는 것 같았고, 신입 기사인 만큼 회사 눈치도 보였다. 그렇다고 일일이 단속하기도 어려웠다. 운전에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여차하면 싸움이 날 수도 있었다. 나는 매번 속으로만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후드 티 모자를 쓴 녀석도 그런 녀석들 중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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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독자모임 - 소설의 상상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공진은 사랑을 일으키지만, 그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진동수가 겹치지 않도록 조절해야 한다고 말이다”라는 문장이 와 닿았어요. 진동수가 겹치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이 맥놀이이고, 스프링, 댐퍼 이런 것들이 충격을 줄여주면서 파국이 오지 않도록 맥놀이를 일으킨다는 것. 내가 사는 삶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여운이 남았다고 할까요. 정홍수 : 김지윤 씨처럼 충분히 읽을 만한 게, 이 소설의 삽화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는 재미있는데 전체적으로는 조금 산만하다는 느낌도 있는 것 같습니다. 공진이나 맥놀이는 하나의 보조관념일 뿐, 삶 자체의 복잡성이나 모순을 다 담아낼 수는 없는 거죠. 아마도 그런 게 이런 계열의 소설이 갖는 어려움일 거예요. 결말에서 버스가 매뉴얼대로 가느냐 아니냐 하는 지점을 질문으로 남겨두면서 모호하게 처리한 것도 그런 고민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