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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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자각몽
자각몽 오은경 네가 곁에 없었을 때 나는 잠만 잤어 널 편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네가 이렇게 빨리 올지 몰라서 아니, 이번에도 내가 잘못한 거지 뭐 무슨 변명을 더 할 수 있겠어 조금도 기쁘지 않았어 그래도 재밌었잖아 내가 봤어 너 좋아하는 거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눈 안에 속눈썹이 들어간 것 같은데 좀 불어 줄래? 이리로 가까이 와서 같이 누울래? 너는 나를 이해하지? 그래서지? 이야기를 듣고 나눌 상대가 필요했던 거잖아 그게 나였고 너였으니 이불을 덮어 줄 사람1)이 부족했던 거구나 추위를 견디며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원망할 자신이 더는 없었으니까 나는 주위를 배회했어 누구도 나를 좋아할 것 같지 않았는데 너는 여기에 있어 전과 같은 자세로 눈을 감고 있었을 때는 어떤 꿈을 주로 꿔? 네가 등장하지 않는 너의 꿈 1) 이부자리를 펴고 잠자리에 들면 아무도 당신에게 이불을 덮어 주러 오지 않을 것입니다. 질 들뢰즈, 클레르 파르네, 〈디알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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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서클
서클 오은경 네가 네 입으로 말했지 오물거리는 입술로 더위 속에서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며 나를 떠날 거라고 네가 떠나겠다고 하지만 내게 다른 선택권은 없는 것 같았어 전에 만나던 사람과 함께 있었으니까 단 하루였지만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으리라는 건 알고 있었지 나는 더는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꿀 먹은 벙어리 같은 네 표정을 돌려놓기 어렵겠지만 노력할 거야 봐봐, 사납게 짖던 도베르만은 흔적도 목줄을 잡아 두던 쐐기도 찾아보기 힘들어졌는걸 마을 사람들은 모두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데 네가 만족하려면 나는 얼마나 여기 더 머물러 있어야 해? 믿음이라는 것은 대체 어떤 의미이기에 네가 떠나는 거야?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멀리까지 가버리면 나는 누군가 다른 사람을 찾게 될지도 모르니까 너와 만났던 나는 누구이고 다른 사람들은 다 정체가 뭐야? 내가 누군가가 되었던 것처럼 너도 나를 이해해 줄 순 없었어? 너는 왜 나랑 만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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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창문에 누워
창문에 누워 오은경 너에 대해 말해야겠다 너는 조금 특별하고 어딘가 유별난 데가 있어 (눈을 자주 깜빡거려, 나는 그게 거짓을 말할 때 버릇인 줄 알았어, 진실은 모르겠는데, 아직 밝혀지지 않았는데······) 입장한 사람, 나타난 누군가 네게는 늘 동행이 있었다(나는 그걸 친구라 불렀지만) 어떤 관계인지 물어 볼 만큼 우리가 가깝다거나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다 나는 너의 친구가 되고 싶었다 이름을 알고 싶었다 내가 너를 불렀더라면, 네가 돌아봤다면 나에게도 한 번쯤은 기회가 있었을 텐데 × 갑자기 변명이 하고 싶어진다 클럽 안 사람들은 대개 말이 통하지 않았고 외국인이었으며, 잔뜩 술에 취해 있었다 너와 닮은, 비슷비슷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네가 아니었으므로, 나는 계속 클럽을 돌았고 왜 내가 혼자 남아 있는지 묻다가 너와 춤추던 (옷차림부터 머리 모양까지 똑같던) 네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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