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
-
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수필 그곳에 내가 있다
그곳에 내가 있다 유경미 빈 테이프에 영상을 새겨 넣는다. 테이프의 한 자리에 내가 있었다. 방송제를 보러 간다. 대학을 졸업한 지 20년 만이다. 나와 지금의 신문방송학과 후배들은 안면이 없다. 있다고 한들 내 기억에는 남아 있지 않다. 그런 나에게 해마다 방송연구회 후배들은 전화한다. “선배님, 방송연구회 후배 ㅇㅇㅇ입니다. 이번에 방송제를 하게 되었습니다. 오실 수 있으신지요.” 고맙다. 안면이 없는 선배들을, 거의 오지 않는 선배들을 매년 초대한다는 일이 쉽지 않음을 안다. 처음 전화는 첫째를 낳았을 때 받았다. 아이 엄마로서 후배들에게 해 줄 말이 없었다. 후배들의 앞날에 더 멋진 선배가 되어 그들 앞에 나타나리라 다짐하며 “아쉽지만, 못 갈 것 같네요”라며 거절했다. 20대의 후배들을 보면 내 아이들 같다. 지금 나의 첫째는 스무 살이다. 나는 대학 동기들 가운데 거의 처음으로 결혼했다.
-
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수필 동그라미
동그라미 유경미 나는 동그라미다. 공 모양으로 모난 곳이 없다. 다른 사람의 말에 토를 달지 않는다. 잘 굴러간다. 그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일이라 생각한다. 무언가 궁금한 일이 있다고 해도 잘 묻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는 않을까, 그 질문에 불쾌하지는 않을까, 나름 배려한다. 동그랗게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살고 싶다. 그래서 동그라미를 좋아한다. 눈이 내렸다. 온도는 내려갔다. 입김이 나를 감쌌다. 눈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깜깜했다. 더 이상 앞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더 이상 보기 힘들었다. 목이 아팠다. 내리는 눈이 나의 얼굴을 덮쳤다. 조그만 눈이 내 얼굴에 쏟아지니 눈을 뜨기 어려웠다. 얼굴이 시렸다. 이까짓 것. 눈을 떴다. 작은 하늘이 보였다. 검은색인가 자세히 살펴보다가 푸른빛이 나를 노려보고 있다고 느꼈다. 사실은 노려보고 있지 않은, 그냥 하늘이었다. 하늘이 바라보는 게 나는 거북했나 보다.
-
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수필 진통제 두 알
진통제 두 알 유경미 약서랍을 연다. 약이 어디 있나, 마음이 급해진 상태로 두통약을 찾으려니 잘 보이지 않는다. 타이레놀 상자의 뜯어진 부분을 보니 거의 다 먹은 듯하다. 그래도 입구를 열고 약의 개수를 확인한다. 다행히 네 알이 남아 있다. 그 가운데 두 알을 꺼내 물과 함께 얼른 삼킨다. 피곤한 날이면 두통이 온다. 내 온몸의 긴장을 몸으로 느끼는 듯 뇌가 각성을 하는가. 빠듯한 계획을 소화하려는 날에는 점심 즈음부터 머리가 아프기 시작해 저녁 내내 밥을 못 먹는 상태에 이른다. 몸 안에서도 바짝 선 긴장감을 유지하고자 점심에 먹은 음식을 소화하지 못해 체한 상태가 그대로 유지되는 건 다반사다. 두통이 심해지면서는 집중력도 떨어지고, 20대 동안 내내 진통제는 나의 동반자였다. 두통의 이유가 궁금했다. 그냥 당연히 머리가 아픈 거라며 다른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여자의 그때가 되면 일주일에 3일은 머리가 아프고 배도 아프고 그랬다.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