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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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모국어
모국어 유용주 루자리 통숙, 허우칭핑, 산토스 재클린 멘도자, 우빠촌 붓파, 와규 다가고, 메라솔비, 이찌노 세리쯔꼬, 에리니, 니따야, 팜티방, 우엔티 바오찬, 누스라 추엔스리, 수드라 웃통, 찬디아, 천양련, 이다희, 손소희, 호레이롱, ······, 모아 놓고 한글을 가르친다 ㄱㄴㄷㄹㅁㅂㅅㅇㅈㅊㅋㅌㅍㅎ ㅏㅑㅓㅕㅗㅛㅜㅠㅡㅣ 아기 진달래 아내 개나리 아, 버, 지, 어, 머, 니, 아아, 어, 머, 니, 갑자기 뒷자리에서 누가 흑, 하고 고개를 꺾는다 봄비 내리고 새는 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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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은근살짝 - 은근살짝 外
은근살짝 유용주 한 방송 프로그램에 지하 선생께서 나와 인생이란 은근살짝 다녀가는 것이라고 ‘은근살짝’은 ‘은근슬쩍’의 전라도 말로 모름지기 인생이란 소리 소문 없이 살다가는 것이 최고라고 자기처럼 시끄럽게(표시 나게) 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특유의 밑바닥 철학을 설파하셨는데 아랍에미리트연합 두바이 행 상선을 얻어 타고 여러 날째 수심 5,000m 인도양 새벽을 건너고 있을 때 누군가 뜨끈한 이마를 쓰다듬는 차가운 손길이 있어 소스라치며 일어났더니 바다보다 더 넓게 퍼진 하늘에 떠 있던 한 떼의 별무리 은근살짝 내려와 글썽이고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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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老軀 - 조리사 외 1편
老軀 유용주 게릴라성 폭우가 방화동 계곡을 휩쓸고 지나간 뒤 오백 년 토종 산벚나무 생을 접었다 꽂 내어주고 잎 찢어지고 몸까지 버렸으니 소신공양이 따로 없다 주인 대신 집 지킨 늙은 개처럼 뿌리가 껴안고 살아온 잔돌 덩어리들이 산 쪽으로 흙 쪽으로 집 쪽으로 혼신을 다해 쓰러진 나무를 끌어당긴다 물이 탁하면 들여다볼 세상까지 흐려지는 것이니 씻어낸다고 깨끗해지겠느냐 흘러가는 그대로 두거라 난세에 붓 꺾지 못하고 창창한 후학들 눈멀게 한 죄 깊으니 염쟁이 부를 필요 없다 싹 나올 무렵부터 공부는 천명이었으나 한 문장도 제대로 얻지 못한 주제였으니 봉분이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 내 몸이 내 업장이 저 돌덩이보다 더 무겁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