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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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붙기 전에 外 1편
붙기 전에 고영민 『창비시선 300 기념 시선집』이 그만 변기에 빠져 버렸다 화장실 찬장 선반 위에 올려놓고 볼일을 볼 때마다 내려 들춰보던 책이 쏟아지면서 보기 좋게 변기 속으로 골인을 했다 재빨리 끄집어냈는데도 책 가장자리가 온통 젖어 낱장들이 하나로 붙어 있다 방에 들어와 붙어 있는 낱장을 떼어 낸다 김수영과 정철훈을 떼어 내고, 정철훈과 허수경을 떼어 내고 허수경과 장석남을 떼어 내고, 장석남과 나희덕을 떼어 내고 고은과 김용택을 떼어 내고, 김용택과 이은봉을 떼어 내고 이은봉과 박형준을 떼어 내고, 박형준과 강신애를 떼어 내고 손택수와 임영조를 떼어 내고, 임영조와 하종오를 떼어 내고 김선우와 이시영을 떼어 내고, 이시영과 장대송을 떼어 내고 문태준과 안도현을 떼어 내고, 안도현과 유안진을 떼어 내고 조말선과 유홍준을 떼어 내고, 유홍준과 최영숙을 떼어 내고 최영숙과 이병률을 떼어 내고, 이병률과 박연준을 떼어 내고 이재무와 신경림을 떼어 내고, 신경림과 이진명을 떼어 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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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도화동 공터 - 오월 외1
도화동 공터 유홍준 중풍을 앓던 아버지가 삐딱삐딱 가로질러 가던 공터 딛을 수 없는, 나는 딛지 못한 공터 어디에 뒀더라 옷이 되지 못한 보자기 같은 공터 누더기 누더기 기운 공터 헛젖이 달린 공터 헛배를 곯던 공터 우울의 그림자 길게 키우던 공터 전봇대에 매달린 보안등만이 목격한 공터 다 늦게 춤바람 난 어머니 야반도주하던 공터 뻑뻑 담배를 빨며 멀리 오색 캬바레 불빛을 바라보던 공터 입맛이 씁쓸하던 공터 억장이 무너지던 공터 석 달도 못 채우고 돌아온 어머니 금세 옆집 야쿠르트 아줌마랑 수다를 떨던 공터 한심한 공터 빌어먹을 공터 중풍 앓던 아버지처럼 등짝이 삐딱한 공터 화장품 팔러 다니던 어머니처럼 낯짝이 얽은 공터 흉물의 공터 곰보딱지의 공터 카악 퉤, 가래침을 뱉고 떠나온 공터 끝끝내 우리 집이 되지 못한 마포구 도화동 가든호텔 뒤의 그 언덕배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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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북천 피순대
북천 피순대 유홍준 우리는 길옆 식당에 앉아 피순대를 받구요 저녁비 내리는 2번 국도 비에 젖어 번들거리구요 여기는 國道가 아니라 天道라 하구요 위태롭게 위태롭게 모자 쓰고 한 손에 낫을 든 사람 걸어가구요 얼굴이 없구요 그는 앞이 없구요 우리는 북천에서 늘 異邦, 나팔꽃 피구요 해바라기 피구요 피순대 한 점 소금에 찍으면 다시 또 한 줄금 소나기, 건널목 없는 북천 늙어 무릎 아픈 여자 비척비척 비닐 봉다리를 흔들며 무단횡단하구요 개나 사람이나 여기서는 다 횡단, 비에 젖은 파출소 불빛 쓸쓸하구요 손바닥만 한 파출소 불빛 치킨집 불빛보다 못하구요 창자에 피를 가득 채우는 게 가능한가, 창자에 피를 가득 채워 삶아 먹는 게 가능한가, 다 태운 담배꽁초 하나 탁 튕겨 국도 위에 버리고 돌아서면 내일 아침 국도 위에 죽어 있는 주검을 또 누가 치우지 휘청, 주검을 밟고 지나가지 않으려고 비틀거리는 차들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어디로 간 걸까 까닭 없이 코스모스꽃 피구요 배롱나무꽃 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