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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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오월
오월 유홍준 벙어리가 어린 딸에게 종달새를 먹인다 어린 딸이 마루 끝에 앉아 종달새를 먹는다 조잘조잘 먹는다 까딱까딱 먹는다 벙어리의 어린 딸이 살구나무 위에 올라앉아 지저귀고 있다 조잘거리고 있다 벙어리가 다시 어린 딸에게 종달새를 먹인다 어린 딸이 다시 마루 끝에 걸터앉아 종달새를 먹는다 보리밭 위로 날아가는 어린 딸을 밀짚모자 쓴 벙어리가 고개 한껏 쳐들어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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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도화동 공터
도화동 공터 유홍준 중풍을 앓던 아버지가 삐딱삐딱 가로질러 가던 공터 딛을 수 없는, 나는 딛지 못한 공터 어디에 뒀더라 옷이 되지 못한 보자기 같은 공터 누더기 누더기 기운 공터 헛젖이 달린 공터 헛배를 곯던 공터 우울의 그림자 길게 키우던 공터 전봇대에 매달린 보안등만이 목격한 공터 다 늦게 춤바람 난 어머니 야반도주하던 공터 뻑뻑 담배를 빨며 멀리 오색 캬바레 불빛을 바라보던 공터 입맛이 씁쓸하던 공터 억장이 무너지던 공터 석 달도 못 채우고 돌아온 어머니 금세 옆집 야쿠르트 아줌마랑 수다를 떨던 공터 한심한 공터 빌어먹을 공터 중풍 앓던 아버지처럼 등짝이 삐딱한 공터 화장품 팔러 다니던 어머니처럼 낯짝이 얽은 공터 흉물의 공터 곰보딱지의 공터 카악 퉤, 가래침을 뱉고 떠나온 공터 끝끝내 우리 집이 되지 못한 마포구 도화동 가든호텔 뒤의 그 언덕배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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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북천 피순대
북천 피순대 유홍준 우리는 길옆 식당에 앉아 피순대를 받구요 저녁비 내리는 2번 국도 비에 젖어 번들거리구요 여기는 國道가 아니라 天道라 하구요 위태롭게 위태롭게 모자 쓰고 한 손에 낫을 든 사람 걸어가구요 얼굴이 없구요 그는 앞이 없구요 우리는 북천에서 늘 異邦, 나팔꽃 피구요 해바라기 피구요 피순대 한 점 소금에 찍으면 다시 또 한 줄금 소나기, 건널목 없는 북천 늙어 무릎 아픈 여자 비척비척 비닐 봉다리를 흔들며 무단횡단하구요 개나 사람이나 여기서는 다 횡단, 비에 젖은 파출소 불빛 쓸쓸하구요 손바닥만 한 파출소 불빛 치킨집 불빛보다 못하구요 창자에 피를 가득 채우는 게 가능한가, 창자에 피를 가득 채워 삶아 먹는 게 가능한가, 다 태운 담배꽁초 하나 탁 튕겨 국도 위에 버리고 돌아서면 내일 아침 국도 위에 죽어 있는 주검을 또 누가 치우지 휘청, 주검을 밟고 지나가지 않으려고 비틀거리는 차들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어디로 간 걸까 까닭 없이 코스모스꽃 피구요 배롱나무꽃 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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