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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왜 여성이었는가
하나가 여성혐오라면, 다른 하나는 일하는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과 관련해서다. 3) 페미니스트가 여성 억압적인 조건에 대해 반항적이며 해방을 위한 외부 지향적 반응을 표출한다면, 히스테리 환자는 사회에 대해 수동적이고 내면 지향적이며 궁극적으로는 자기 파괴적인 거부를 표현한다.(리타 펠스키, 김영찬·심진경 역, 『근대성의 젠더』, 자음과모음, 2018, 25쪽 참조) 4. 이미 백 년 전 신여성의 글/삶은, 역사에 오점을 남기는 방식으로(만) 여성의 삶이 기록되고,4) 일종의 가십거리, 조롱거리로 여성의 글쓰기를 소비했던 남성 지식인의 시선을 증거해 준다.(「제야」,「김연실전」) 신여성, 아프레 걸, 호스티스와 여공 문학이 아니더라도, 한국 소설사의 갈피갈피마다 미소지니(misogyny)의 장면은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흔하며, 대상화·타자화는 여성 재현의 공통 규약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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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언니들은 나와 춤을 추지 내 치마를 들추지 않지
[비평] 언니들은 나와 춤을 추지 내 치마를 들추지 않지 성현아 “춤이 먼저 여자 해방의 길로 중요성이 있는 것이다.” 이는 1949년, 여성에 관한 인식이 지금과는 사뭇 달랐던 시기에 정지용이 남긴 문장이다. 이 문장이 쓰인 그의 글 「사교춤과 훈장」은 2020년대인 현재의 관점에서 보자면, 여성 인식이 뒤떨어지는 글이기는 하나, 법적으로든 관습적으로든 여성 인권이 지금보다 더 보장되지 않았던 시기의 글임을 감안하고 본다면,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 있다. 실제로 훈장을 차기 좋아하는 여자를본 적이 없었으니 그것은 훈장적본능이 없어서 그런 것이아니라 애초에 체관적 단념으로 그러했던 것일가 한다. 그러나 춤추기 좋아하는 여자는 훈장을 욕망하는 여자보다는 비교할 수 없이 천문학적 숫자이상으로 많은 것이다. 여학교에서 무슨 발표회니 친목회니 하며 훗닥하면 무대에 올라가 춤을 춘다. (중략) 그후로 두고 두고 보아하니 내가 이햇성이 늦었던 것이 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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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비평 비주류 생존기― 여성의 호명과 자리들
여기, 여성들의 생존기 몇 편을 가져와 얘기해보자.4) 1) 리베카 솔닛, 「정치와 미국의 언어」,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 서문, 김영남 역, 창비, 2018. 2) ‘여성 청년’이라는 호명이 ‘여류 작가’나 ‘여성 대통령’식으로 오히려 여성의 소수자적 위치와 차별화를 부각하는 인상을 줄 수 있으나, 지금까지 일하는 젊은 여성은 우리 사회에서 ‘아가씨’ ‘~양’ ‘미스’ 등으로만 불렸을 따름이며 이런 호칭은 현재는 상대적으로 고급직종에 종사하는 여성에게는 직책이나 이름이 그것을 대신하고 있어 단절된 듯 보이지만, 여전히 단순·서비스 종사자에게는 유효하다. 그러니까, 이 호칭에는 산업화 시대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역사적으로 혁명적‧정치적‧사회적 삶의 주동 세력으로서의 청년이 남성을 쉽게 대체해왔음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