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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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비인칭 주어의 겨울 한 컷
비인칭 주어의 겨울 한 컷 이신조 ‘얼다’와 ‘녹다’라는 동사를 물이나 얼음뿐만 아니라, 마음이나 감정을 주어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흥미롭다. 따뜻하다, 시원하다, 눅눅하다, 건조하다, 뜨겁다, 시리다 등도 마찬가지. 마음에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고 구름이 흘러가고 햇살이 내리쬔다. 기상현상은 언제나 친근하고 매력적인 메타포다. ‘비인칭 주어’를 처음으로 배웠던 중학교 영어시간을 기억한다. It is raining. - ‘It’은 누구인가, 무엇인가, 과연 비인칭. It은 딱히 규정하기 어렵고 모호한 ‘그것’. 비가 온다. - 누가 비를 내리게 하나, 무엇으로 말미암아 비가 내리나. 감히 비인칭이 아니고서야. 안개가 걷힌다, 파도가 출렁인다, 천둥이 친다, 하늘이 맑다, 이슬이 맺힌다······ 이 문장들의 진짜 주어는 각각 안개가, 파도가, 천둥이, 하늘이, 이슬이 아니다. 나는 오래도록 비인칭주어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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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하이힐에 대한 명상
200 이신조 하이힐에 대한 명상 스트립쇼를 직접 본 적은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스트립쇼가 뭔지 모르는 건 또 아니어서 그에 대해 몇 마디쯤 말할 수도 있겠다 싶다. 섹스어필을 상업적인 목적으로 하여, 무대 위의 여자가 옷을 벗는다. 거의 예외 없이 자극적인 음악과 자극적인 조명과 자극적인 춤이 곁들여진다. 관람객의 취향을 고려한 드라마틱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고 한다). 우리는 영화 속에서 스트립쇼가 벌어지고 있는 무대를 향해 휘파람을 불거나 환호성을 울리는 불콰한 얼굴의 남자들을 본 적이 있다. 종종 스트리퍼의 노출을 부추기는 노골적이고 음란한 농담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건 실제에서건 희한하게도 스트립쇼의 관람객들이 결코 ‘벗어라’라고 요구하지 않는 게 있으니. 바로 그녀의 신발, 하이힐이다. 하이힐을 신지 않은 스트리퍼를 본 적이 있는지? 하이힐을 신지 않은 맨발의 스트리퍼를 상상할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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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그림자가이드
작가소개 / 이신조(소설가) - 1974년 서울 출생.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98년 《현대문학》 신인공모로 등단. 단편집 『나의 검정그물스타킹』, 『새로운 천사』, 『감각의 시절』, 장편소설 『기대어 앉은 오후』, 『가상도시백서』, 『29세 라운지』, 『우선권은 밤에게』, 『크리에이터』 등 출간. 문학동네작가상 수상. 《문장웹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