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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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파손
파손 이실비 모래시계를 들고 당신이 왔습니다 삶이 너무 짧다고 나를 찾아와 말했습니다 하얀 빨간 모래 알갱이가 다투며 내려오는 밤 당신 어깨에서 연필심이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연필심이 뾰족하게 돋아나는 시간 당신이 아파했습니다 바닥을 뒹굴면서 마루를 죽죽 그었습니다 당신에게 기다려 달라고 할 수 없어서 기다릴 시간이 없어서 당신 어깨에 큰 종이를 대고 문질렀습니다 계속 문지르면 밀려 올라오는 연필심은 없었습니다 내가 이제 매일 종이를 줄게 좋은 종이를 줄게 한 사람을 위해 견딘다고 생각하면 밤이 길어서 종이를 채우는 검은 선들로 충분한 밤이라고 믿는 일 그렇다고 그렇게 익숙해지자고 어깨를 잡고 구르는 사람에게 밤을 버티는 기쁨을 말하진 않았습니다 새로 그려야 하는 그림과 새로 써야 하는 시는 아침에 찾아오니까 어떤 음악은 한낮에 들어야 더 충격적이니까 충격은 흐르게 두어야 하니까 모래시계를 깨트려 모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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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오해와 오후의 해
오해와 오후의 해 이실비 해바라기는 새카맣게 탄 얼굴을 가졌지 우는 사람의 두 볼이 둥글게 부풀어 올라 눈물이 신나게 미끄러지는 한낮 두 손을 모아 앉는다 오늘은 아무도 울지 말라고 하지 않기를 오늘만큼은 실컷 울 수 있기를 우산 없이 빗속을 걸으며 속옷까지 젖기를 컵에 담긴 물을 쏟기를 엎질러진 물을 치우는 손이 자신의 손이 되기를 평평한 손톱 끝으로 뺨을 쓸어내렸다 수천 개의 발걸음이 지나간 해변의 모래를 만져 보듯 그렇게 웃는 사람의 잇몸을 더듬어 보던 혀처럼 그렇게 동시에 숨고 동시에 뱉어지는 파도 같은 웃는 사람의 잇몸 열려 있는 발코니 용과와 칼 테이블과 선베드 해변의 산책자들 모르는 정수리들 웃는 사람과 나란히 앉아 듣던 선셋 인 더 블루 만약 태양을 깎을 수 있다면 껍질을 벗기고 반으로 가를 수 있다면 기쁨과 고단함이 몸을 섞으며 쏟아내는 붉은 즙을 삼키고 반의 반으로, 반의 반의 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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