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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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기상 이변
기상 이변 이정란 파묘에 내려앉은 밤의 눈송이는 얼마나 눈부신 해골일까 자넨 예측할 수 없는 삽날 그렇다면 어둠을 너무 깊게 파거나 손목을 축내지 말길 오늘의 날씬 그다지 날씬하지 않아 발끝에서 시작된 길을 따라다니고는 산에 다녀왔다고 말하는 것처럼 뒤죽박죽 돌아보면 히말라야가 되어 있는 길의 체감온도를 몰라 날씨는 늘 뒷걸음이지 내 속에 보글거리고 있는 악담을 미세먼지 강조하는 형광펜으로 사용하면 내일의 날씨는 노루를 따라 산등성을 오르내리게 될 거야 노거수가 없다면 함박눈은 공중의 습도로 측량되었을 테고 검은 타일 바닥에 쌓인 눈은 가면 같아 본색을 가린 누군가가 숨어 엿보는 것 같아 눈이 사라진 후 녹아 질척이는 뱀의 혀와 까마귀 눈알에 대해 속닥거려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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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달빛 터미널
달빛 터미널 이정란 다른 게 아니라 달빛으로 빚은 소주를 마시고 싶어서, 두루마리 달빛으로 밑을 닦고 싶어서, 새끼 보름달 삶아 먹다 목메 죽고 싶어서, 죽었다가 나무로 태어나 달빛으로 머리 감고 지나가는 비바람을 꼬여 앉혀 터미널이나 지으려고 검버섯 피기 시작하는 시간 쉬었다 가고, 아픈 별들 건너오게 견딜 수 없이 자라나는 팔다리는 하늘 저편에 걸쳐 둔다 물의 새끼들을 사막으로 보내 쓰러진 낙타 입술 축여 주고 달빛 환으론 아기 못 낳는 여자 자궁에 불을 지필 수도 있겠어 하수구에 버려진 아기 데려다 걸음마 가르치면 당신은 나무 이름을 모두 달빛으로 바꿔 부르고 싶을걸 죽은 동생 목을 조인 주황색 빨랫줄을 노란 달빛으로 바꿔 주러 같이 가자, 아버지가 버리고 온 라이따이한 남매 가슴에 월계수 꽃가지도 걸어 주고 다녀와서 소주 한잔해, 검은 달을 낳다 죽은 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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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시·시조 「당신 귀는 언제부터 두 개였지」외 6편
당신 귀는 언제부터 두 개였지 이정란 빳빳하게 말라버린 침묵에 따뜻한 우유를 붓고 잘 저어줍니다 만져지지도 읽히지도 않는 그것이 씹어 삼킬 수 있는 물성으로 바뀌는 순간이 있습니다 알약 하나로 끼니를 대신하는 시대가 온들 이런 매직은 사라지지 않겠죠 발효가 덜 된 그림자의 통식빵 식기 전에 얼른 찢어 삼킵니다 세상 버리고 동굴로 들어간 사람의 심장이 이런 맛일까요 어젠 통 부풀지 않아 효모를 과하게 넣어도 보고 열선도 두드려보고 재료의 배합보다는 부글거리는 화기를 타이머로 조절시키는 방식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니게 가루도 아니고 액체도 아니게 질척임은 더욱 아니게 비율이 잘 안 맞으면, 당신 귀는 언제부터 두 개였지, 엉뚱한 간투사가 튀어나와요 환장하게 뜨거워도 끓어오르지 않고 겉바속촉 완성하기 거울의 소용돌이 오랫동안 걸어두었던 얼굴을 떼어 뒷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