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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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매 정
매 정 이현아 복싱을 하던 언니는 훈련 중 관장님에게 세게 맞고 화장실에 가 엉엉 울었다고 했다. 너무 아파서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고 했다. 그때 느꼈던 감정에 슬픔과 분함과 좌절감이 섞여 있었는지 나는 알 수 없지만 언니는 너무 좋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매 정이라는 게 드는 것 같기도 하다고, 관장님이 너무 좋았다고 그랬다. 나도 누군가에게 죽을 때까지 두들겨 맞아 본다면 혹은 누군가를 죽을 때까지 두들겨 패 준다면 나도 엉엉 울 수 있을까? 정들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그 정도쯤은 나도 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저 잠시 내게 헤드기어를 씌워주고 나를 링 위에 올려 보내 보았을 뿐이다. 그러나 상상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나는 당신들에게 두들겨 맞는다. 당신들은 글러브를 끼고 훅을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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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눈물
눈물 이현아 무덤 나란히 다섯 개. 풀숲이 무성해질 때마다 집안 남자들이 찾아가 깎았던. 이곳은 연안 이씨 가문의 선산이고 무덤은 크고 봉긋하다. 무덤은 크고 무겁다. 조상의 무덤을 파 본 적 없지만 무덤 안은 깊을 것이다. 아빠는 그곳에 부모를 묻었을 것이다. 묻다니. 묻는다니. 아빠는 오른쪽 무덤을 가리키며 엄마라 부르고 왼쪽 무덤을 가리키며 아버지라 부른다. 아빠는 무덤 앞에 납작 엎드린다. 나도 납작 엎드린다. 무덤은 크고 봉긋하다. 무덤 안은 김장독처럼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할 것 그곳에서 시체는 천천히 썩어 갈 것 감히 나를 묻다니 나는 무덤 안에 있고 아빠는 내게 납작 엎드린다. 엄마도 오빠도 선생도 친구도 엎드리고 내 남자 친구는 저 옆에 서서 오열하고 내 전 남자 친구도 찾아오고 저들끼리 엄숙하고 슬프지만 나는 아주 깊은 곳에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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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희곡 복도 굴뚝 유골함
그들에게 이현아 씨의 죽음은 그냥 사고였던 거예요. 이 나라에는 이등 시민의 죽음을 파헤칠 정치적 동기가 완전히 부재해요. 내 어머니는 이현아 씨가 총에 맞아 죽었다는 사실을 몰라요. 아버지 일로 총기사고를 극도로 두려워하시거든요. 이거 지켜줘요. 건축사진사내가 아는 엄마의 이름은 이현실이에요, 이현아가 아니라. 나는 짤막한 메일 한 통 때문에 장장 열두 시간을 날아왔어요. 무급휴가까지 썼다고요. 그런데 이현실은 어디에도 없고 사람들은 전부 이현아 앨리스 이야기를 하네요. 조용하고 자그마한 동양인 여자. 동양인 여자는 미국인들이 보기에 대체로 조용하고 자그마하지 않나요. 그러니 이 말은 누구도 특정하지 않으며 그가 아무도 아니었다는 뜻과 다름없죠. 이현아가 이현실이 아니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죠? 나는 지구 어디에선가 핏줄로 이어진 누군가가 죽으면 손톱 거스러미라도 뜯어질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현아 앨리스가 죽었다는 그날 밤에 나 뭐 하고 있었는지 알아요? 엽떡 먹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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