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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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우리의 주소
우리의 주소 이훤 숙희야 남희야 미안해 비슷한 주소에 살던 너희 친구로 만든 고기 사료를 너희에게 준 사람이 있었다는 게 미안해 너희를 다 쓴 냄비처럼 폐기한 것도 사랑이 다 그렇지는 않아 인간의 사랑이 다 그렇지는 않아 너희에게 용서를 배워 나는 아직 용서하지 못한 시절이 있어 돌아가고 싶지 않은 친구가 있어 어떻게 하면 미워하지 않고 살 수 있어? 토해 내는 털 뭉치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기다렸구나 모든 마음을 번복하고 싶을 때 어떻게 돌아갈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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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사람은 이상해
사람은 이상해 이훤 사람은 이상해 사람을 믿게 하지 사람은 이상해 들고 있던 사람을 떨어뜨리지 사람은 이상해 그게 불가피하다고 생각하지 사람은 이상해 아침에는 누구든 덜 미워한다 사람은 이상해 기분이 망가지는 데 몇 초가 안 걸리지 사람은 이상해 일어나면 거울을 본다 머리 만지고 자기 얼굴 보는 데 그 많은 시간을 쓴다 엘리베이터에서는 앞으로만 보면서 사람은 이상해 필요하면 곁눈을 만든다 사람은 이상해 바닥을 보며 걷는다 사람은 이상해 부딪혔는데 왜 사과를 안 해? 사람은 이상해 삼 초 안 지났다며 떨어뜨린 걸 주워 먹는다 사람은 이상해 노숙자를 멀찌감치 비켜 가지 사람은 이상해 그 많은 생일을 기억한다 사람은 이상해 너무 많은 생일을 까먹는다 사람은 이상해 촛농 떨어질 걸 알면서 초에 불을 붙이지 사람은 이상해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 축하 노래를 어떻게 다 외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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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대나무 숲을 서성이는 고양이, 그리고 토마토
대나무 숲을 서성이는 고양이, 그리고 토마토 이훤 이번 여름 나는 지독한 갈증에 시달렸다. 하루 몇 컵씩 물을 마셔도 몸이 아우성쳤다. 더 많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것 같았다. 이상할 정도로 몸이 약해졌다. 어쩌면 너무 많은 마음을 쫓느라 그랬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곤란해졌다. 물을 너무 많이 마시면 소화가 안 되고 소화가 안 되면 자연히 몸에 수분이 부족해졌다. 하여 또다시 갈증으로 이어졌다. 나는 이 일련의 과정이 내가 평소 불안과 맺고 있는 관계와 비슷하다는 생각했다. 잘 지내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위태로워지곤 하는데, 무엇이 먼저였는지 모르겠다. 이미 내가 불안한 사람이었는지, 불안은 어디든 자라므로 그가 날 알아볼 수밖에 없었던 건지. 불안한 자는 취약해진다. 취약한 자는 더 불안해진다. 어떤 세계는 정확한 수순을 모른 채 이어진다. 불안과 느슨하게 잘 지낼 방법을 찾고 있다. 어차피 여기 오래 상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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