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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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문보영-일기
나는 내 비밀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내 비밀에 포함된 다른 누군가까지 보호해야 한다.16) 16) 문보영, 「비밀」, 블로그 일기(2018. 12. 08.) 문보영의 일기에서 ‘비밀’과 ‘진실함’의 층위, 그리고 그 표현 양태로서의 ‘일기’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문보영의 텍스트 속에서는, 앞서 살핀 ‘일기 주체’의 모순과 긴장이 ‘일기(비밀)’의 핵심이라는 점이 분명하게 인지되고 있으며, 그 사실이 일기-쓰기를 통해 끊임없이 암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일기, 즉 ‘비밀’에 접근하는 이들은 비밀에 대한 일종의 반응을 한다. “아직 네 비밀 건재하니? 어디 한번 살펴보자.” 일기 주체에 따르면 일기의 독자는 이와 같은 ‘가정된’ 반응을 내재하고 있는데, 이러한 반응은 ‘사실’의 층위와 다른 의미의 진실로서 일기 쓰기에 개입한다. 그 반응은 다름 아닌 일기 주체 내부에서 작동하는 ‘상상된’ 반응으로, 쓰기를 가능케 하는 주된 요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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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1월 일기
1월 일기 조성래 1월 9일, 행복한 날들이 지나간다 1월 10일, 아니, 내가 직접 지나간다 거리의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직접 1월 12일, 2008년 교원동, 어머니 들어 오시지 않던 날, 나는 잠든 동생과 함 께 누워 두려움에 떨다가 문득 먼지 쌓 인 예수상의 가슴에서 초록색의 빛이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1월 13일, 관상을 좀 배웠다는 시청자 가 라이브 방송에 출연한 나더러 도깨 비상이라고 했다 도깨비불의 인(燐)ㅡ 외롭고 슬픈 인간은 스스로라도 불빛을 만들어 낸다 1월 16일, 교회들의 첨탑이 피뢰침처럼 뾰족하다 벼락불과 지옥으로 떨어질 영 혼들 끌어모아 천국으로 갈 단 하나의 영혼을 마련하기 위해서일까 그 끄트머 리에 빛 하나 걸어 놓은 윤동주 1월 17일, 어머니가 쓰러졌다, 세상의 좌반구 마비에서 건너오는 천사들이 불 타는 강에 가로막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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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미래 일기
미래 일기 박상수 비단벌레 차를 같이 타고 싶었던 사람에게 선물을 건넸다 새로 나온 음반이야, 덧붙일 말이 많았지만 그 정도로만 말하기로 했던 결심을 잘 지킬 수 있어서 돌아오는 길이 자꾸만 늘어났다 대답도 없이 간략한 눈빛도 없이, 고개를 숙이고 걸으면 내가 나를 밀어내는 것처럼 얕은 멀미가 올라왔다 빙글, 길게 휘어졌던 여름의 구름과, 걸어 들어가고 있구나 커튼 뒤의 하늘로, 여름의 복판으로, 생도너츠와 홍차를 먹고 천변을 걸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잘못한 일들만 자꾸 생각났다 간판 없는 실비집에서 나를 야단쳤던 사람, 너에게는 결정적으로 빠진 게 있잖아, 그런 말을 듣는 일이 식물에 빛이 닿듯, 나를 일으켜 세우기도 하였다 커튼 뒤에 아무것도 없으면 어떻게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