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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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그러나 러브스토리
그러나 러브스토리 장수진 비늘이 없는 절벽과 파도가 없는 퉁퉁 불은 발목과 뛰어오는 아이가 없는 잠듦 아무도 없는 물속 벤치에서 청년 차이코는 프스키를 연주한다 털이 무성한 동물의 목을 어루만지듯 물이 털이 아닐 리 없다는 듯 꽁꽁 언 고양이 한 마리가 떠오르고 기린 두 마리가 서로의 목을 감아 조른다 증오가 사랑이 아닐 리 없다는 듯 연거푸 차이코의 부러진 열 손가락이 작은 원을 그린다 원은 곧 추락하고 그렇게 파도 그렇게 음악 그렇게 해변 깊은 바다로부터 밀려 나온 손잡이들 잠든 사람들의 귓속으로 푸른 모래가 끝없이 들어간다 누군가는 근처 병원을 가고 누군가는 무의식에 음악을 둔다 그들 코끝의 소금 한 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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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서서히 개가 되는 날들
서서히 개가 되는 날들 장수진 재난 영화의 첫 장면처럼 무너지는 책장 아래 너는 웅크려 있었다 멋쩍게 손을 올린 자세가 괜찮아 보였다 쏟아지는 책들에 흠씬 두드려 맞던 너는 바람이 휘갈긴 책 한 페이지를 보며 말했다 이 엉터리 작가 새끼 나는 슬픈데? 포크 같은 년 그 그리스 요리나 해먹어라. 너는 너를 고독과 파멸의 천재라고 했다 죽었다 개죽음개개죽음 밥 먹듯이 말하고 다니더니 진짜 개죽음이었다 나쁜 의미의 개 세상에서 제일 슬픈 개였다 문제는 역시 죽음보다 개였다. 상냥했지 시비가 붙으면 여자든 남자든 애든 개든 공평하게 따귀부터 갈기던 너는 매우 상냥했다 봄에 밤에 딱 한 번 이유가 없었다 천사 같던 너 투견처럼 뛰어올라 목 맨 벚꽃을 따먹고 헤헤 돌아버렸지 존댓말도 썼지 아, 좋습니다. 천사, 자신을 천상으로 쏘아올린 지상의 진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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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두부 시네도키
두부 시네도키 장수진 사막은 어디서 불어오는가 모두가 누워있다. 오직, 두비와 코기만 걷는다 두비와 코기는 토한다, 사막의 끝에서 예쁜데 미쳤어. 두비와 코기의 손목을 잡고 따라온 잠의 아가씨들. 병실과 복도에 작은 집과 화단을 만든다. 거실 창문을 부수고 들어온 두툼한 물의 공. 빛이 검다 검어. 여자들은 모두 똑같이 말한다. 검다 검어. 푹, 쓰러진다. 일으킬 수 없도록. 미이라처럼 굳어버린, 잠 칵칵, 꽃이 잿빛 잠을 토해낸다. 잠은 물의 그을음 여자는 잠 속에서 두부 한 모를 떠올린다. 나는 그것을, 만질 수도 먹을 수도 없구나...... 그리운 나의 두부 한 모...... 너는 너무나 멀리에 있다. 부드럽고 은은한 햇살이 드리워진 식탁 위에, 실바람에도 가볍게 흔들리는 린넨 커튼 옆에. 너는 구석구석 조금씩 썩어간다. 부서질 듯 연약한, 한줌의 생활이여 담장의 나팔꽃을 뜯어먹던 창밖의 고양이는, 어느덧 집 안을 배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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