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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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조각공원
조각공원 전욱진 내가 언제나 죽는 장소가 있다 지금은 공원이 되었다 뜻하지 않게 당신과 그곳을 거닌다 그렇다면 바로 오늘일까 지나온 나의 삶을 낱낱이 조각하여 공연히 전시해 놓은 그의 악취미에 속으로 내가 혀를 내두를 때 당신은 여우 석상과 나를 번갈아 보면서 이거 참 예쁘지 않느냐고 묻는다 폴짝 뛰어올라 눈 속으로 파고들던 세기를 문득 떠올리며 그거 참 예쁘다고 답한다 그렇게 허다한 나의 전생을 지나는 동안 우리가 공간이 아닌 시간을 걷고 있다는 생각 언제나 쓰러지던 지점에 다 이르렀을 즈음 당신에게 건네지 못한 말이 너무 많다는 생각 그러나 마침내 우리는 공원의 끝에 다다라서 이어지던 조각상도 더는 보이지 않았고 어리둥절해진 나는 당신을 놓아둔 채 앞을 향해 계속 걸어가 본다 이대로 조금 더 걸어도 좋겠지만 저만치 걷던 내가 다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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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오기로 한 날
오기로 한 날 전욱진 네가 방에 슬픔을 치워 놓았다고 뿌듯해하기에 아무 말 하지 않기로 한다 오기로 한 날이잖아요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네 나는 모른 척하기로 하고 네가 방문을 열면 먼저 놀라워할 준비 방 안에 들어서서 맘껏 즐거워할 준비 어떻게 이걸 혼자 다 할 수 있었느냐 물으면 너의 대답은 명료할 것이기에 나는 거기에 맞춰 소리 내면 될 것이다 오기로 한 날이니까 서로가 동시에 같은 말을 했다는 사실에 우리는 유쾌해져서 함께 웃음 지을 것이다 같이 지내는 이 방에 이제 슬픔이란 없으며 그 형편에 금방 적응한 사람처럼 굴 것이다 저녁이 되면 우리는 한동안 맛보지 못했던 음식들을 나눠 먹고 술도 마셔서 모처럼 어지간히 취할 것이다 그러나 식탁 앞에는 너와 나만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정이 넘으면 너는 방으로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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